"한국 기자인가?"
"그런데, 무슨 일로."
"(승용차) 홀짝제가 제대로 지켜질 거라고 생각하나."
"확신은 못하겠지만 (서울)시민들의 협조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핀란드 기자는 따져 묻듯 글쓴이에게 질문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을 며칠 앞둔 현재의 코엑스 자리에 있던 메인프레스센터에서 일어난 일이다. 핀란드 기자는 서울의 대기 오염 수준이 심각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특히 마라톤 경기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구시 보건환경연구원은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제13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는 대구스타디움과 마라톤 코스의 공기를 측정한 결과 육상 경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국제보건기구(WHO) 기준치를 크게 밑도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22일 밝혔다.


측정 결과에 따르면 대구스타디움 주변의 하루 평균 미세먼지(PM-10)는 우리나라 환경 기준(100㎍/㎥)보다 훨씬 엄격한 WHO 기준치(50㎍/㎥)의 절반인 25㎍/㎥으로 나타났고 이산화질소와 일산화탄소 등 오염 물질도 WHO 기준치를 훨씬 밑돌았다.

미세먼지보다 인체에 위해도가 더 높은 것으로 알려진 초미세먼지(PM-2.5)는 WHO 기준치(25㎍/㎥)보다 크게 낮은 13㎍/㎥로 선수들이 경기하기에 좋은 공기 상태를 보였다고 한다. 마라톤·경보 코스의 미세먼지는 WHO 기준치의 절반 이하인 평균 21㎍/㎥로 조사됐다. 대회 기간 대구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조금만 협조하면 마라톤을 비롯한 모든 종목의 경기를 쾌적한 환경에서 치를 수 있게 됐다.


1998년 12월 20일 제13회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마지막날 이봉주의 역주를 기대하며 TV 앞에 모인 스포츠 팬들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TV 화면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방콕의 교통 체증은 세계적으로 악명이 나 있다. 그래서 대회를 앞두고 교통 문제와 함께 대기 오염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날 TV 화면에 비친 거무스름한 방콕의 하늘은 우려 이상이었다. 이런 좋지 않은 조건에서도 이봉주는 역주를 거듭한 끝에 2시간12분32초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 서울은 방콕과 비슷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도심 정비 사업이 이뤄졌고 대기 오염과 교통 체증을 막기 위해 각종 차량의 홀짝제 운행이 시행됐다. '포니' 택시는 외국인들이 타기에 불편하다고 '88스텔라'로 바꿨다. 1980년대까지 만해도 미아리고개와 무악재고개 등 서울의 주요 고갯길에서는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차량을 단속하는 공무원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핀란드 기자가 물었던 것처럼 깨끗한 올림픽을 치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명품인 한국의 가을 하늘은 이 같은 우려를 깨끗이 날려 버렸다. 개막일인 9월 17일부터 폐막일인 10월 2일까지 서울의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시민들의 홀짝제 참여는 완벽했다. 대회 폐막일 오후 2시 30분 출발 총성과 함께 70개국 118명의 건각이 한강을 끼고 도는 코스를 달리기 시작했다. 발전하는 한국, 그리고 서울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한강변을 달리는 코스만한 게 없었다.


청명한 날씨와 맑은 공기, 강을 보며 달리는 코스에서 98명의 선수가 완주했고 겔린도 보르딘(이탈리아)이 2시간10분32초로 금메달, 더글러스 와키후리(케냐)가 2시간10분47초로 은메달, 후세인 아메드 살라(지부티)가 2시간10분59초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일본의 나카야마 다케유키는 6초 차이로 메달 놓쳤다. 순위 싸움을 하느라 2시간10분대 안쪽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 레이스 후반 한강의 맞바람도 기록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 성화 점화자인 김원탁이 2시간15분44초로 15위, 유재성이 2시간20분11초로 31위를 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때도 같은 코스를 달렸다.


나흘 앞으로 다가온 제13회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 경기는 여자는 개막일인 27일 오전 9시, 남자는 폐막일인 9월 4일 오전 9시에 출발한다. 이번 대회 마라톤 코스는 변형 루프 코스, 일명 도돌이표 코스다. 국채보상운동공원을 출발해 청구네거리~수성네거리~두산오거리~수성못~대구은행네거리~반월당네거리를 돌아 다시 출발점으로 오는 15㎞ 구간을 두 번 왕복하고 같은 구간을 단축해 마지막 12.195㎞를 달린다. 대구 시내를 뱅뱅 도는 코스다.


런던, 뉴욕과 보스턴, 시카고, 로테르담, 도쿄 등 세계 주요 마라톤 대회는 새로운 기록의 산실이기도 하고 도시를 알리는 최고의 홍보 수단이기도 하다. 대구는 2003년 하계 올림픽을 치른 곳이긴 하지만 도시 홍보 측면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견줄 수준이 아니다.


이번 대회도 역대 대회처럼 기록보다는 순위 싸움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마라톤 대표팀 남녀 10명은 지난 12일 오전 이번 대회 코스를 1시간 가량 달리며 최종 점검을 했다. 이날 출발 때 기온은 섭씨 29도였고 습도는 68%였다. 대회 당일에도 이와 비슷한 날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날씨면 좋은 기록은 예상하기 어렵다. 온도의 경우 섭씨 10도 안팎이 이상적이다.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선수들은 남자는 2시간9분대~13분대, 여자는 2시간30분대 안팎의 개인 최고 기록을 갖고 있다. 힘든 레이스가 예상되지만 전 세계에 대구를 알리는 가운데 우리 선수 몇몇이 선두 그룹에서 뛰는 장면이 TV 화면에 잡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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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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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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