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한 조각 먹으려… 중소형사 도넘은 제살깎기 경쟁
[아시아경제 정재우 기자] #지난해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무료 수수료'를 선언해 많은 고객을 확보한 A증권사는 올해 초 무료 기간을 올 연말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일부 경쟁사들이 뒤를 따랐다. 다급해진 다른 증권사 두 곳은 한 술 더 떠 '3년간 무료'라는 파격적인 서비스를 제시했다. MTS의 질적 경쟁력으로 승부하려 했던 한 중형증권사의 관계자는 "힘이 쑥 빠져버렸다"며 허탈해했다.
중소형 증권사들의 수익성 악화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0 사업연도 자기자본 1조원 이상 10개 대형증권사의 평균 ROE는 8.5%였지만 자기자본 1조원 미만 4000억원 이상의 13개 중소형증권사의 평균 ROE는 5.7%에 불과했다. 중소형 증권사들의 수익성이 저축은행 정기예금 이자율보다 크게 나을 게 없는 수준이라는 의미다. 중소형사 중 세 곳의 ROE는 4%에도 미치지 못했고, 한 곳은 아예 적자를 기록했다.
중소형 증권사들은 일단 자본의 규모를 키워 난국을 타개해보겠다는 움직임이다. 자기자본이 100억 미만의 한 소형증권사는 증자를 통해 자기자본매매(PI)업 라이센스를 확보, 사업을 다각화한다는 계획이다. 자기자본 300억원대의 한 증권사는 자본 확대를 통해 인수업 라이센스를 확보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이들보다 규모가 좀 더 큰 증권사 한 곳은 장외파생업 라이센스를 취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의 사례다. 중소형 B증권사의 자기자본 지수옵션 매매가 전년대비 10배 이상 급증했다. 100억원이 넘는 이익도 남겼다. 하지만 이는 비슷한 규모의 C증권과 D증권에서 관련 인력을 대거 영입한 결과였다. 이 때문에 C증권과 D증권의 관련 수익은 40% 가까이 감소했다. 제 과실을 키우기 보다는 남의 과실을 빼앗는 경쟁을 벌인 셈이다.
단기성과 평가 위주의 시스템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경영자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영업직원들의 보수 체계에 이르기까지 가시적인 실적에만 민감하다보니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문에서 경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길재욱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고객의 이익확대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영업이익 및 거래대금 확보에 매달리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행태는 중소형사들의 건전한 구조조정을 방해하는 요소로도 작용했다. 경영환경이 악화되더라도 성과급을 대폭 줄이고, 계약직 영업직원들을 구조조정하면서 간단히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존폐위기에 쉽게 빠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틈새시장 찾기를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시장을 창의적으로 조성하는데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남들이 하지 않지만 수익성이 있고 우리수준에 적당한 것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분에서 수익을 낼 만한 것들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노희진 박사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에 대해 차별화된 가격을 지불하는 서비스 문화가 형성될 때 질적 경쟁을 통한 경쟁력 제고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양대 길재욱 교수는 "고객을 가장 중요시하는 기업문화를 만들고 고객 수익을 극대화하는 증권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을 때 중소형사 또한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중소형사가 각자 특화된 방향을 찾는 과정에서 당국도 규제완화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우 기자 j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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