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서로도 못 끊는 父子지간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명문대 박사 학위를 가진 남자. 거짓말과 각서로 동거녀의 마음은 떼어낼 수 있었지만 자식은 떼어낼 수 없었다.
2001년 7월경 서울 명문대 재학생 박모(30, 당시 20세)씨는 인터넷 채팅으로 서모(39, 당시 29세)씨를 만나 동거에 들어갔다. 6년의 동거 기간 동안 잦은 임신중절과 자연유산으로 서씨의 자궁은 제 기능을 잃어갔다. 그러던 찰나 2008년 박씨가 인터넷 채팅으로 여대생 A씨를 만나기 시작하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A씨는 박씨의 여동생인척까지 해가며 '집안반대'를 명목으로 이들의 결별을 도왔다.
서씨는 아이를 가지면 행여나 돌아올까 인공수정을 제안했다. 박씨는 정자 증여 이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조건을 달아 각서를 쓰고 난 뒤에야 동의했다. 각서만으로 불안했던 박씨는 서씨에게 접근금지가처분까지 신청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우여곡절 끝에 서씨는 박씨와 A씨의 관계가 남매가 아닌 연인인 것을 알게 됐다. 서씨는 2009년 12월 쌍둥이를 낳고 지난해 1월 아이들과 함께 박씨를 법정에 세웠다.
서울가정법원 가사 3부(박종택 부장판사)는 22일 서씨가 전 동거남 박씨에게 사실혼관계 파탄에 따른 위자료와 자녀에 대한 인지 및 양육비 지급을 청구한 사건에 대해 박씨는 서씨에게 위자료 3500만원을 지급하고, 본인의 자녀들에게 매달 양육비 50만원을 지급토록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박씨는 "임신, 출산, 육아, 양육에 있어서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작성"했으므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자(子)의 복리에 반하는 것이 명백하다"고 할 "각서를 이유로 하는 박씨의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또 자신은 "서씨에게 정자만 제공한 사람으로서 불특정사람을 위해 정자를 정자은행에 기증한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아버지가 될 의사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아버지로서 책임있는 보호와 교양을 기대할 수 없는 점 등 여러 사정을 참작해 친권자 및 양육자는 서씨로 한다"고 정했다. 친권도, 양육권도 없는 박씨는 '엄마 성을 따르는' 두 쌍둥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비를 지급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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