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준 기자의 CINEMASCOPE - '인 어 베러 월드'
[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문법인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의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과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을 상징하는 문구로, 물경 4000년에 육박하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만고의 진리로 여겨진다. 왜 아니겠는가.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내밀라’로 대표되는 마틴 루터 킹과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주의에도 불구, 범인들의 마음 한켠에는 언제나 함무라비의 문구가 깊게 새겨져 있다.
라스 폰 트리에(‘브레이킹 더 웨이브’ ‘어둠 속의 댄서’)와 더불어 덴마크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인 수잔 비에르의 ‘인 어 베러 월드 In a Better World’는 복수와 용서 사이에서 갈등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선택 이야기다. 의사인 안톤은 덴마크와 아프리카를 오가며 의료 봉사를 펼친다. 안톤은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의 성별을 맞추는 아프리카 군벌 대장의 끔찍한 폭력에 분개하지만, 이런 폭력은 아프리카만의 일은 아니다. 안톤의 아들인 엘리아스는 스웨덴 사람이라는 이유로 왕따와 폭력에 시달리고,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는 신입생 크리스티앙은 엘리아스로 하여금 맘 속 깊은 분노를 표현하라고 부추긴다. 난민을 무자비하게 살육하는 아프리카 군벌 지도자의 부상을 치료하게 된 안톤 역시 용서와 복수 사이의 두 갈림길에 접어든다.
‘인 어 베러 월드’는 먼지 풀풀 나는 아프리카 평원의 난민 캠프와 건조하고 차가운 기운의 덴마크 상류층 마을, 이렇게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공간을 능수능란하게 오간다. 폭력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폭력은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일상 속에서도 빈번히 일어난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점차 그 강도는 커져만 간다. 영화는 복수와 용서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자 안톤과 엘리아스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휴머니즘의 의미를 관객들로 하여금 반추하게 한다. 영화의 영어 제목인 ‘더 좋은 세상에서’ 앞에 생략된 말은 ‘나는 지금 살고 있다’와 ‘나는 살고 싶다’ 중 과연 어떤 것일까?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안에서 망가지게 그냥 둘 순 없어"…'파업 대비' ...
AD
진지한 소재의 ‘인 어 베러 월드’는 명징하고 힘있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한다. 휴머니즘 영화를 선호하는 미국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석권한 ‘인 어 베러 월드’는 무겁고 진지하기는 해도, 전혀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 이런 것이 바로 연출과 각본, 연기의 힘이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