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왕' 빌 그로스, 이번엔 헛다리 짚었나
폭락 장담했던 美국채 예상외 강세에 '당황'
[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세계 최대 채권투자회사 퍼시픽인베스트먼트(핌코)의 공동설립자로 ‘채권왕’으로도 불리는 빌 그로스 회장이 예상 밖의 위기에 체면을 구기고 있다. 미국 국채의 폭락을 수 차례에 걸쳐 장담했지만 오히려 연일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그로스 회장은 "최근 몇 개월간 미 국채 가격이 과대평가되어있으며 국채가격 하락에 따라 수익률이 상승할 것"이라고 누차 언급해 왔다. 그는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미 정부 부채가 상당한 규모로 누적돼 있는데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2차 양적완화(QE2)에 따른 6000억달러의 자산매입 프로그램이 6월로 만료되면 시장의 주 매수자까지 사라져 국채가격이 폭락하고 수익률이 상승해 미 정부의 자금조달 금리 부담이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로스 회장은 이같은 입장을 투자자들에게 매달 보내는 서신을 통해 거듭 밝혔으며 TV 프로그램 출연, 공개 강연은 물론이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서까지 강조해 왔다. 그가 이처럼 강하게 확신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로스는 지난 2월 자신이 운용하는 2400억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채권펀드 토털리턴 펀드가 보유하고 있던 미 국채자산을 팔아치웠고 3월 이후 지속적으로 매도 포지션을 취하는 한편 독일·브라질 등 외국 국채에 투자할 것을 추천해 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3월부터 시장의 흐름이 그의 생각과 정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 국채는 계속 폭등하면서 2월 3.72%였던 10년물 수익률이 최근 3% 아래까지 떨어졌다. 그로스가 추천한 외국 국채도 상승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미 국채는 5월 들어 이들을 크게 웃돌았다.
WSJ는 핌코의 토털리턴 펀드 투자자들이 그로스가 채권시장 전망 판단에 완전히 실패한 것인지 아니면 월가의 투자전문가들이 종종 범하는 실수처럼 비관적 전망을 ‘너무 이른 시점’에 내놓은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로스 측은 토털리털펀드의 실적이 적어도 5월까지는 경쟁 펀드들에 비해 꽤 양호했다는 점을 방어논리로 들고 있다. 그러나 5월 세계 경기 침체 우려가 강하게 부각되는 와중에도
미 국채는 올해 들어 최대 상승세를 이어갔으며 토털리턴 펀드는 설립후 최악의 부진을 면치 못했다.
토털리턴 펀드의 가격변동과 이자지급을 반영한 수익률은 5월 0.52%로 경쟁 채권펀드들의 수익률에 비해 0.5%포인트 이상 낮았으며 이는 동종 펀드그룹 내 하위 10%권에 불과한 성적이었다. 펀드수익률조사업체 모닝스타에 따르면 토털리턴 펀드가 월간수익률 하위 10%권으로 처진 것은 2003년 펀드 창립 이후 다섯 번째이며 2010년 11월 이후 6개월만이었다.
또 최근 3개월간 수익률은 5월 말까지 상위 44%권 이내를 유지했지만 이후 하위 40%권으로 떨어졌고 올해 총 수익률 순위도 전체의 50% 밑으로 떨어졌다 .
비록 최근 성적은 부진하지만 그로스의 펀드는 과거 15년간 수익률에서 상위 4%권, 10년간 수익률에서 상위 7%권으로 장기수익률 면에서는 여전히 경쟁 펀드들을 앞서고 있다. 기관투자자 펀드의 경우 15년간 수익률이 상위 1% 이내다.
WSJ는 그로스의 ‘때이른’ 전망이 시간이 흐른 뒤에 옳았던 것으로 드러난 적도 많았으며 특히 금융위기 당시 그는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증명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경우도 그의 선견지명을 나중에 증명하게 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그로스는 좀처럼 경험하지 못한 험로를 지나고 있음은 확실하다고 WSJ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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