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총장의 공부비법도 정도(正道)였다
오연천 서울대 총장, 미림여고서 생애 첫 특강
[아시아경제 박은희 기자]오연천 서울대학교 총장이 난생 처음 여자고등학교 강단에 섰다. 30년 가까이 교수로 일하면서 특강이나 강연에 전혀 나서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고백한 그였다. 지난 20일 오전 10시.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등단한 오 총장은 서울 미림여고와 미림여자정보과학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저는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7남매 가운데 막내였다. 형들이 서울에서 입주 가정교사로 대학을 다니던 시절. 초등 3학년이던 그는 서울에 올라와 형들과 일주일을 함께 보내게 된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서울에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던 것이다.
어린 소년은 전차를 타고 서울에 가는 그림일기를 썼다. '서울에 가서 학교를 다니고 싶어요'라는 글을 적어둔 것은 물론이다. 이 그림일기를 서울에 있는 형에게 부쳤는 데 공교롭게도 형이 가정교사로 입주해있는 집주인의 손에 먼저 닿았다. 그 편지를 기특하게 여긴 집주인의 도움으로 어린 오 총장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상경의 꿈을 이루게 된다. 공주버스터미널에서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버스에 오른 그는 조치원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5시간이나 걸려 서울역에 도착했다. 전차를 타고 내려 30분을 걸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연 중 잠시 생각에 잠긴 오 총장은 여고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도착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으면 짐이 무겁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초등학교 4학년때 그렇게 혼자서 서울에 올라온 일을 생각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오 총장의 솔직한 이야기에 학생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학교에 왔으니 공부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딱 세 가지만 하겠다는 그가 알려준 비법은 이랬다. 신문 읽기와 요점 찾기 그리고 예습하기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신문을 읽었다는 오 총장은 "고등학교 2, 3학년 정도 되면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객관적 정보에 대해서 일정한 수준의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왜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지, 왜 우리나라와 EU의 FTA협정 체결에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는지 등에 대해 기본적인 흐름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문을 읽으면서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생각의 폭을 키우는 것이 공부와 대학진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오 총장은 요약 능력을 강조했다. 그는 "교수 생활을 해보니 학생의 역량과 능력은 결국 커뮤니케이션 능력, 곧 소통능력으로 나타나더라"며 "소통 능력이라는 것은 결국 압축해서 핵심 메시지로 집약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오 총장은 "이런 능력은 고등학교, 대학입시 뿐만 아니라 대학과 직장, 사회생활에서도 그 사람의 능력을 단적으로 표현해 준다"고 설명했다. 결국 공부를 할 때도 중요한 가치와 명제는 한두 가지인데 그것을 추려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끝으로 제시한 것은 예습이었다. 오 총장은 "수업에 들어가기 전날에 그 다음날 배울 것을 미리 읽고 생각하고 상상한 다음에 수업을 듣는 사람과 아무런 준비 없이 그 자리에서 소화하는 사람의 차이는 매우 크고 예습은 복습보다 5배의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오 총장은 교수로서 또 총장으로서 지금까지 성장해온 원동력은 언제든 이같은 예습의 원칙을 지켰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오 총장은 "오늘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서울대의 어떤 교수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요약해서 제시해보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며 "선생님이 시켜서 이 자리에 나왔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수록 이 50분의 강연을 그냥 잃어버리지 말고 값진 100분으로 만드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강연은 오 총장과 20년 넘게 각별하게 지내온 김기병 미림여고 이사장(롯데관광 대표이사 회장)의 부탁으로 성사됐다. 강연을 들은 미림여자정보과학고 1학년 채문정 학생은 "총장님처럼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열심히 노력해서 세상이 필요로 하는 프로그래머의 꿈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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