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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선연호지(善緣護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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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수평선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꽃나무들이 시원스레 배치된 이국적인 분위기의 도량 약천사(藥泉寺). 그곳은 파도에 실려 가는 은은한 범종소리에 태양이 눈 비비고 여명의 자태를 드러내는 선경 같은 가람입니다.

제주도 서귀포 대포동 해변의 습기 머금은 새벽 공기를 느끼며 멀리 한 바퀴 돌다보면 8년6개월간에 걸쳐 감행된 대 불사의 역정을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30년 동안 미완성의 그림을 그리듯이 곳곳에는 아직도 공사 중인 현장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엔 진입로도 없었다던 산 밑의 초라한 절 한 채와 전설을 담은 도약샘(道藥泉). 1988년 고향을 사랑했던 한 40대 스님의 원력으로 시작된 동양최대 규모의 대법당(겉으론 3층이나, 내부는 천장이 트인 25m 높이 단층)이 백두산의 나무로 빚은 비로자나 주불을 모심으로써 1996년 그 위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애초 도약샘 주변은 제주도에서 가장 높은 수확량을 자랑하는 감귤밭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원에서 만나는 하귤(夏橘)나무들을 통해 인연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됩니다. 현재 영글어서 떨어지는 황금빛 하귤은 15개월 동안 풍상을 견뎌낸 결실이고, 그 주변 가지엔 진초록의 2세 하귤들이 내년을 기약하며 탱탱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한 나무에서 동시에 2대를 걸쳐 동거하며 달고도 상큼한 맛을 전수시켜주고 떨어지는 것처럼, 대법당에는 인연의 소중함을 알리는 ‘선연호지(善緣護持)’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죠. 사는 동안 ‘아름다운 인연을 좋게 이어가기’ 위해서 주지 성원스님이 펼치는 3호(三好)운동은 단순명료합니다.
좋은 생각하고
좋은 말하고
좋은 행동 하자는 것인 즉

혼자 있을 때는 좋은 생각을 하고
둘이 만나면 좋은 말을 하고
셋 모이면 좋은 일을 하자는
취지입니다.

창건주 혜인(慧印) 큰스님의 100만 배 용맹정진. 20대 후반인 1971년, 가야산 해인사 팔만대장경각에서 매일 5000배씩 코피를 쏟으면서 200일간 초인적으로 감행한 절을 통해서 출가 장부의 원력을 시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해인사 강원에서 참선을 하며 먹지도 잠들지도 못하던 그에게 방장인 성철 선사는, “절하다 죽은 사람 없으니 일단 시작하면 끝을 보라” 하고 100만 배를 권하고 지켜보기만 했답니다.

세수 서른에 곯은 무릎으로 아득하게만 보였던 100만 배 고지에 오른 날, 그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되지요. 다만 기도 중에 받은 관세음보살의 명훈가피에 의해 이후로는 무슨 일이든지 스스로 원력을 세우면 반드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다시 2003년 10월부터 충북 단양의 도락산자락에 머물며 60여만평 광활한 부지에 조성중인 광덕사 백만불전(百萬佛殿). 그건 세계일화(世界一花)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시작된 불사로 2017년 5월을 정점으로 한 여정입니다.

등에 진 바랑 하나가 전부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세계최대의 꽃동산을 만들어 놓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조금도 의심 들지 않았습니다. 오직 믿음 하나로만 내디뎠던 발걸음이 지연(地緣)을 따라 그리 큰 족적을 남긴 것을 보며, 종교를 넘어 삼라만상 무한한 인연들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사의 궁극이 지상에서 이보다 더한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요.
善緣護持(선연호지)=“좋은 인연 좋게 이어가자”



김대우 시사평론가 pdik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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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 시사평론가 pdik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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