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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마저 없어지면 어디로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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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 북아현동의 시름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쪽방살이 7년이지만, 이런 집마저 없어지면 정말 아이들 데리고 갈데가 없다. 한숨만 나온다"

지난 6월 사업시행인가를 마친 북아현동 1-1구역 달동네에 거주하는 김종래(남·47)씨는 요새 사는 것이 힘에 부친다. 우울증을 겪는 것도 같고 힘든 노동에 몸도 심하게 피로하고 아프지만 병원에 갈 여유도 없다.
특히 북아현뉴타운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내년 9월쯤에는 이주가 이뤄질 것이라는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

지난 23일 김씨의 집을 찾았다. 추계예술대학 후문을 지나 학교 담을 끼고 계속 올라가다보면 보경수퍼가 나온다. 거기서 왼쪽에 난 골목길로 한참을 올라가다보면 김씨의 집이 있다. 고지대라 서울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김씨의 가족은 지난 2002년부터 이 곳 전세금 1500만원짜리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쪽방 2개, 부엌 1개로 이뤄진 슬라브 낡은 집은 여섯식구가 살기에는 턱없이 비좁았다. 쪽방은 각각 3평도 채 되지 않았다. 한 방에서 모든 식구가 상을 펴놓고 식사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처럼 생활은 여의치 않지만 김씨와 김씨의 아내인 윤현숙(여·44)씨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커나가는 모습을 보고 희망을 키우고 있다. 옷장 밖에는 "나는 억수로 재수가 좋은 사람이다"라고 쓴 종이를 붙여놓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이들이 원하는 침대가 있는 공부방을 마련해줄 수 있을거라 기대하며 살아간다.

올해 3월에는 서울시가 저소득층을 위해 정책적으로 만든 희망플러스통장에 가입해 다달이 20만원씩 저축하고 있다. 3년뒤 이자와 시에서 지원하는 금액을 합치면 총 1600만원정도를 탈 수 있어 그 돈을 보태 조금 나은 곳으로 전셋집을 구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최근 재개발 진행 소식에 난감해졌다. 북아현뉴타운은 총 5구역으로 재개발이 이뤄지는데 그 중 도로변에 위치한 1-3구역이 내년 4월이면 이주를 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고, 1-1구역도 그 후 6개월 후면 거주자들이 이사를 가야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요새 전셋값도 훌쩍 뛰어 최소한 8000만원 정도는 수중에 있어야 하고, 물건이 있다해도 갈 곳이 없다. 김씨는 하루하루가 절망스럽다. 2년전부터 영등포에서 식자재 유통업을 하는데 김씨가 출근하는 시각이 새벽 4시반이다. 강원도 지역으로 물품을 운반하고 나르는 일을 한다. 일을 마치면 오후 6~7시다. 장시간 힘든 육체노동으로 이제는 그 피로가 너무 누적됐다. 집에 돌아와도 방이 좁아 맘편히 발 뻗고 잘 수도 없고, 아이들한테 미안하고 고마운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렇게 일해서 김씨가 벌어들이는 한달 수입은 120만원 수준이다. 청약저축, 저금, 생활비, 교육비 등을 제외하면 오히려 50만원정도가 부족하다. 남편이 벌어들이는 수입이 부족해 도움이 되고자 윤씨도 그동안 식당에서도 일해왔지만 1년전 허리를 다쳐 일을 제대로 못하다가 최근 이대복지관에서 자활프로그램을 받고 있다. 이달 말이면 한달이 되고, 취업을 하거나 시에서 60만원 정도 지원을 받으면서 5개월 정도 배우고 싶은 수업을 더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한데 어제는 설상가상으로 김씨의 아버지가 간암판정을 받았다. 몸도 기력이 없어 수술은 불가하다는 판정이다. 김씨의 이마에 주름이 더 늘었다. 낯빛은 슬프고 어두운 모습이다.

김씨는 "하루종일 힘들게 일하지만 나아지는 게 없는 것 같다"면서 "재개발 돼 나가라고 하는데, 살 곳을 좀 마련해 줘야하는게 아니냐. 정 안되면 인근 산 위에 컨테이너박스로 임시 거주처라도 좀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세입자들에게는 일절 어떠한 정보도 제공되지 않고, 그저 내쫓기게 되는 상황에 김씨는 화가 난다. 아이들 학교도 주변에 있고 방과후 활동도 인근 지역아동센터에서 지원을 받고 있어 그나마 살아가고 있는데 이주비를 줘도 갈 곳없어 발만 동동 구르게 생겼다.

윤씨는 그래도 "아이들에게 대견한 아버지고, 힘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에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있다"며 남편을 위로한다. 윤씨는 지금 시에서 지원하는 매입임대나마 구하길 소망한다. 그리고 남편의 건강이 회복될 수 있도록 조금은 덜 고된 일자리를 구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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