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를 초래한 공범이라는 이유로 국제 신용평가사에 대한 규제강화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신용평가사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기존의 영업방식으로 여전히 배를 불리고 있다.


23일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대형은행들은 정부와 기업, 은행들이 발행한 채권을 가지고 대량 거래와 매각에서 얻어진 수수료와 중개료로 대거 수익을 올리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켠에선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 같이 무디스와 스탠더드앤푸어스(S&P) 등 대형 신용평가사들이 정부 보증을 받든 안받든 발행된 채권에 무조건 신용등급을 책정하면서 짭짤한 수익을 챙기고 있다.

이들 신용평가사는 자신들이 신용 위기를 악화시켰다는 비난 여론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채권 시장의 중심에서 예전과 같은 사업 모델로 막대한 자금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무디스와 S&P,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신용 위기의 원흉인 수천억 달러 규모의 모기지담보부채권(MBS)등에 'AAA'의 최고 등급을 매긴 장본인들. 이들은 여전히 많은 투자자들에게 채권을 사야할지 말아야 할 지 여부를 판단 해주고 있으며, 규제 당국과 다른 공공기관들에 대한 리스크 평가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들의 얄궂은 행태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다. 미국 최대 연금펀드인 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캘퍼스)이 무디스와 S&P, 피치 3대 신용평가사를 고소한 것이다. 캘퍼스는 이들 신용평가사가 구조화 상품에 대해 부적절한 신용등급을 매겨 10억 달러 이상의 투자 손실을 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캘퍼스의 고소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S&P는 현재 투자자 및 기관들과 얽힌 44건의 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그 동안 신용평가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벌인 사례는 꽤 있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신용평가사들이 표현의 자유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미 헌법에 의해 철저하게 보호받아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캘퍼스와의 소송 건은 신용평가사들의 이 같은 행태가 지속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열쇠가 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업계 최대의 관심사로 자리잡고 있다. 보이드 워터슨 자산운용의 글로벌 투자전략가인 도널드 로스는 "캘퍼스의 소송건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미 정부도 신용평가사들을 벼르고 있다. 다만 실효성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


지난 21일 미 재무부는 신용평가사의 투명성을 높이는 등의 내용을 담은 신용평가사 규제안을 제안했다. 재무부가 발표한 신용평가사 규제안에 따르면 기업들은 신용평가사가 최종 등급을 책정하기 전에 사전등급을 부여받아야 하며, 부여받은 사전등급은 투자자들에게 공개돼야 한다.


이 같은 조치는 이른바 '등급쇼핑'을 막기 위한 것. '등급 쇼핑'이란 여러 신용평가사로부터 예비등급을 받은 뒤 가장 좋은 등급을 최종 선택해 발표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함께 신용평가사는 채권등급을 부여받은 기업으로부터 받은 수수료를 매번 공개해야 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재무부가 발표한 신용평가사 규제안에는 핵심사안이 빠져있음을 문제삼고 있다. 이들은 채권 발행자들이 신용등급을 부여받기 위해 신용평가사에 지불하는 수수료를 규제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규제안도 솜방망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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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 대학에서 법학을 강의하는 조세프 그룬드페스트 교수는 "당국의 제안은 매우 적극적이지만 사실은 겉모양만 그럴싸해 비난받기 십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신용평가사가 진정으로 변화하길 바란다면 신용평가 업계가 양대 신용평가사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투자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새로운 (신용평가) 부문을 창출해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용평가사 규제기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메리 샤피로 SEC 위원장은 22일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증언에서 재무부가 추진중인 신용평가사 규제안을 거듭 확인시키는 한편 새로운 규제는 이번 여름 끝 무렵부터 시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배수경 기자 sue68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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