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요? 그런 거 모르는데요."
 
마치 남의 일인냥 무덤덤한 답변이었다. "우리 회사에 그런 게 있느냐"고 되묻는 듯한 그의 시선이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국내 굴지의 IT 서비스 업체에 다니는 A씨와 최근 가진 술자리 경험담이다. A씨에게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의 자주적 조직'인 노조는 사전적 의미에 그칠 뿐이었다.

'IT 강국' 코리아이지만 유독 IT 업계의 노조는 존재감이 약한 게 사실이다. 어느 IT 기업의 노조가 파업을 했다느니, 사측과 격한 갈등을 겪고 있다느니 하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다.

포털 업체에 근무하는 B씨는 "IT는 개인 플레이가 강하다. 프로그램을 짜거나 서비스를 운영하거나 팀보다는 개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개인 중심의 업무가 IT 노조의 조직력을 느슨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직률이 높은 것도 IT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는 또 다른 원인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IT 업체 인력들은 3∼5년에 한 번씩 이직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나마 이동통신사의 노조는 힘이 좀 센 편이다.

지난 해 SK텔레콤 노조는 미국 MVNO(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MVNO 사업팀에게 상여금을 지불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측에 맞서 노조 위원장이 '삭발' 농성까지 펼치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다. 결국 사측은 상여금을 정상 지급함으로써 갈등은 일단락됐다.

KT 노조도 예전에는 강성 중 강성이었다. 지금은 노사간 상생 협력의 모델로 꼽히고 있지만, 지난 1998년과 2000년에는 민주노총 투쟁을 선도하는 등 노사갈등의 대명사로 통했다. 이제는 노조 스스로 '어용'이라고 농담삼아 부를 정도로 세도 많이 약해졌다.

이런 KT 노조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KT 노조 관계자는 "KT-KTF 합병 과정에서 단 한명이라도 노조와 합의ㆍ협의하지 않고 자른다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여차하면 투쟁에 나설 듯한 분위기다. 이석채 KT 사장이 "합병을 통해 인위적인 감원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노조는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눈치다.

KT는 오는 27일 임시주총에서 KT-KTF 합병을 승인한 뒤 5월18일 통합KT를 출범시킨다는 구상이다. 이석채 사장의 공언대로 합병KT에는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을지, 아니면 KT 노조가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할지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정일 기자 jay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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