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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기업 살리기 금융권도 동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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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신년기획] 내수를 살리자
시중금리 하락에도 자금난 여전히 '심각'
정부·은행권 강력한 추가대책 시급



#1. 안산에서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사장 L씨. 지난 9월부터 그의 일과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은 자금관련 업무다. 신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대출을 유지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임무가 됐다.

"은행에서는 대출금을 매월 10억원씩 갚아나가라고 하는데, 어디서 그 돈을 구합니까. 올해는 비용을 줄이고 줄여 겨우 적자를 면하지만, 최근부터 매출이 심상치 않게 감소하고 있어 내년에는 자칫 적자를 낼 수도 있습니다. 증권시장도 엉망이어서 추가로 증자를 할 수도 없는 실정입니다."

L사장은 지난해 11월 자신의 업무용 차량을 중형차로 바꾸고, 운전기사도 해고했다. 직접 운전을 해서 은행 지점을 찾아다니고 정부의 정책자금을 얻을 수 있을까 팔방으로 뛰어나니고 있다. 해가 바뀌어도 상황이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자, 그는 '이제 직원들을 내보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잠을 못이루고 출근하는 날도 점점 잦아지고 있다.
 
#2. 지난해 12월30일 인천의 A은행 지점장 방. 지점장인 Y씨와 한 자동차부품 제조 중소기업 사장이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납품회사가 라인 가동을 중단하면서 이 중소기업도 덩달아 휴가에 들어갔다. "직원들 월급은 줘야하니 3000만원을 추가로 대출할 방법이 없느냐"는 중소기업 사장의 요구에 Y지점장이 난색을 표했다.

"본점에서는 기존 대출도 상환하라고 하는데 추가로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설정된 담보로는 기존 대출도 과도합니다. 신용대출을 해줄수는 있지만 그것도 소득이 안정적인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공장이 멈췄는데 이자를 제때 낼 수 있겠습니까."

Y지점장은 매일 3~4명의 중소기업 사장을 맞는다. 이들 대부분이 추가 대출이나 대출상환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본점의 방침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는 "정부는 자기자본비율 맞추라고 하면서 한편으로 중소기업 대출도 늘리라고 요구하는데, 은행들로서는 당장 살아남는 것이 먼저 아니냐.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토로했다.
 
기업들의 돈줄이 막혔다. 미국에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는 국내 은행들의 숨통을 조였고, 급기야 실물부문으로 급속히 전이됐다. 자기자본비율을 맞춰야 하는 은행들의 대출상환 압박은 더욱 거세지고 있고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발행도 더욱 어려워졌다. 수중에 현금을 쥐고 있지 않은 중소기업은 시간이 흐를수록 버틸 여력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9월 중순 이후 기준금리를 무려 2.25%포인트나 내렸다. 채안펀드 지원 등에는 19조5000억원의 자금을 공급했다. 덕분에 회사채와 CP 금리가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이같은 군불 지피기의 열기는 제한적으로만 느껴지고 있다.

양진모 SK증권 연구원은 "한은의 유동성 공급으로 시중금리가 하락하고 있지만 우량기업 회사채와 CP 발행을 제외하면 여전히 기업들의 자금난은 심각하다"며 "특히 CP 금리는 우량기업 위주로 고시돼 시장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한은이 기준금리를 1%포인트나 인하하면서 한때 금리가 12.05%까지 떨어졌던 'BBB-'급 회사채의 경우 다시 12.31%를 기록하고 있다.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신규로 발행하지 못하는 중견그룹 계열사들과 중소기업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여러차례 시중은행들을 향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끊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데에 이어 "정부가 돈을 그렇게 집어넣어도 돈이 밑으로 흐르지 않는다"고 꼬집었음에도 불구 시중은행들은 기업과 가계 부문의 자금난에 팔짱만 끼고 있다.

특히 시중은행들은 '당장 이자를 낼 수 있느냐, 원금을 갚을 수 있느냐'라는 단순한 기준으로 기업들을 평가하고 있다. 앞으로 경기침체가 지속될 경우 도산 등 구조조정 작업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와중에 기술력을 갖춘 우수 기업들이 사라진다면 결국 국가경쟁력에도 나쁜 결과를 미치게 된다. 때문에 금융권이 기업에 대해 단순한 돈놀이식 거래로만 일관하는 것은 사회적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10여년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이 무차별적으로 도산했었다"며 "정부와 금융권이 보다 강력한 금융지원에 나서는 한편 합리적인 지원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취재>조영주ㆍ이규성ㆍ이경호ㆍ정수영ㆍ이초희 차장, 안승현ㆍ배수경ㆍ채명석ㆍ김재은ㆍ박종서ㆍ황상욱ㆍ박병희ㆍ김혜원ㆍ이광호ㆍ강미현 기자 <사진> 윤동주ㆍ이재문 기자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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