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北 국호를 조선으로? 대화 주체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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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구성 핵시설' 발언 후폭풍이 가라앉기도 전에 북한 국호 변경 이슈로 논란의 불씨가 옮겨붙었다. 통일부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으로 바꿔 부르는 방안에 대해 공론화에 나섰다. 정 장관은 이미 여러 차례 공식 석상에서 해당 호칭을 썼다. 남북관계에 관해 '한조(한국·조선)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남북은 완전히 단절됐다. 그나마 의견 일치된 대목이 있다면 '두 국가로 살자'는 것이다. 다만 그 앞에 북한은 '적대적', 이재명 정부는 '평화적'이라는 각자의 형용사를 달았다. 정 장관은 우리가 당장 통일을 시도할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내보이기 위해 취임 직후부터 부처명 변경을 시도했다. 실제 관철되진 않았으나, 이후 정부 내에서 '탈북민'을 '북향민'으로 바꿔 부르도록 했고 9·19 군사합의 일부 복원, 비무장지대(DMZ) 관할권 조정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제안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완전히 얼어붙은 현재의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그 냉기를 조금이라도 없애줄 '발칙한 제안'이 때론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제안들이 좀처럼 추진력을 얻기 어려운 이유는 자기 안의 모순 때문이다. 정 장관이 바라는 대로 남과 북이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가 아니라 '대한민국'과 '조선' 두 국가가 된다면, 통일부는 존재 이유를 잃을 수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여타 국가처럼 조선이란 국가도 '외교 상대'다. 향후 조선과의 외교적 대화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그 일은 자연스레 외교부의 업무가 되지 않겠는가. '두 국가로 잘 지내자'는 정 장관 주장은 곧 통일부 정체성을 위협한다.

위헌성 시비도 있다. 대한민국과 조선이 각각의 국가라면, 우리의 영토는 대체 어디까지인가.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명시한 헌법과의 충돌 문제는 꾸준히 지적됐지만 소위 '자주파' 진영에선 이에 대해 명쾌히 대답을 내놓은 적이 없다. 두 국가론은 곧 한반도 영토의 절반을 포기하겠단 선언이나 다름없다. 만약 여론조사에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대한민국 영토를 휴전선 이남으로 하자'고 묻는다면, 과연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 통일부 장관이 북한의 '두 국가론'에 동조하면서 발생한 모순이 한두 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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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관계 개선에 관한 뜨거운 열정도 좋지만, 지금은 냉정해야 할 때다. 향후 북핵문제 해결에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전혀 알 수 없다. 핵심 주체는 미국이고, 한국은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했다. 적정 속도를 유지하며 선수를 이끌어야 할 페이스메이커가 홀로 급발진해버리면 경기를 망치고 말 것이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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