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사교육 금지 법안' 통과 환영
AI시대 영유아교육 패러다임 전환
학습자 주체성과 변혁적 역량 확대

2024년 개봉한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에 나오는 주인공인 11살 초등학생 '동춘'은 왜 학원에 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빡빡한 사교육 일정에 치여 살아간다. 영화적 상상력인 줄만 알았던 이 모습은 2025년 이른바 '4세·7세 고시'라는 현실로 나타나며 영유아기까지 번진 과도한 선행학습의 충격을 우리 사회에 던졌다. 지나친 사교육 열풍이 아이들의 일상을 뒤흔들고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권마저 위협하는 지금,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회가 영아 사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적절한 조치다.


사교육 과열의 배경에는 부모의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교육열이 유난히 높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며, 입시 구조가 서열화 되어 있는 우리의 교육적 환경에서 부모의 불안한 마음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불안을 해소하는 방식이 영유아기부터 한글, 영어, 수학 등 교과 위주의 선행학습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결과 '더 빨리', '더 많이' 배워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아이들은 우월의식과 경쟁심을 먼저 배운다.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때 아이들은 스스로를 '실패자'나 '낙오자'로 낙인찍으며 무너져 간다.

[발언대]미래를 여는 가장 인간적인 배움,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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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지점에서 유아의 자유로운 '놀이'가 왜 배움의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 교육학자 말라구찌는 아이들에게 '100개의 언어'가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말과 글뿐 아니라 몸짓, 놀이, 그림, 상상, 이야기 등 수많은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지금 유아들에게 몇 개의 언어만 허락하고 있을까. 유아를 미리 준비시키는 사교육은 아이들에게 정해진 길을 빠르게 걷게 한다. 무엇을, 어떻게, 어느 속도로 배워야 하는지가 이미 정해져 있다. 그 안에서 유아는 틀리지 않는 법을 배우지만, 스스로 탐색하고 표현하는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말라구찌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아들의 100개의 언어 중 대부분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놀이는 학습과 분리된 휴식이 아니라 유아에게는 삶 그 자체다. 때로는 조금 느리고, 때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 과정 속에서 유아는 스스로 방법을 찾고,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타인과 소통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기른다. 놀이의 진정한 가치는 정답을 맞히는 결과가 아니라 '어떻게 스스로 알아가게 되었는가'라는 과정에 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함께 공존해야 하는 미래 세대에게 이러한 놀이의 가치는 더욱 절대적이다. 단순히 정답을 도출하는 능력보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관계를 재구성하는 능력이 중요해진 시대에 '놀이 중심 교육'은 단순한 교육 방법의 변화가 아니라 교육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강조하는 '학습자 주체성' 및 '변혁적 역량'과 그 맥을 같이한다.


결국 아이들의 놀이는 가장 인간적인 배움의 방식으로 교육의 중심에 다시 놓여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스스로의 삶을 가꾸어 나가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놀이의 가치를 온전히 이해하고 지지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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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선 한국교원대학교 교수(전 한국영유아교육과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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