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10년간 10배 늘었는데
송전설비는 사실상 제자리 걸음
남은 태양광 전기 버리는 호남
전력난 걱정하는 수도권 기업들
전력망 특별법 아직도 통과 못해
전남 영광에서 20년째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하는 A기업은 최근 재생에너지 사업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기존의 태양광 시설도 전기를 생산하려면 설비를 고쳐야 하는데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국가가 전기 생산을 강제 중단하는 '출력제어'가 지난해부터 육지에서 대대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해서다. A기업은 앞으로 출력제어가 더 늘어나면 전력 생산으로 얻는 돈보다 비용이 더 커질 것으로 판단했다. 이 기업 관계자는 "더 이상 태양광 발전 사업에 비중을 두지 않을 것"이라면서 "경쟁이 심해진 상황에서 출력제어까지 받으면 타격이 너무 크다"고 토로했다.
주로 섬 지역에서만 이뤄지던 태양광 출력제어가 지난해 육지에서 대대적으로 발생한 사실이 확인됐다. 태양광 설비는 빠르게 증가했는데, 정부가 전기를 보낼 송전선로를 확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법은 여전히 국회에 발목 잡힌 상태다. 문제 해결을 서두르지 않으면 향후 친환경 재생에너지 보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반도체 산업과 같은 대규모 전력수요에 원활히 대응하기 어려울 거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태양광 10배 늘 때 송전설비 제자리걸음
17일 아시아경제가 전력거래소와 공공데이터포털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육지에 있는 태양광발전소를 대상으로 27차례에 달하는 출력제어가 이뤄졌다. 2023년 2회뿐이던 출력제어는 1년 만에 13배 넘게 늘었다. 육지 태양광발전소의 출력제어는 2021년(3차례) 처음 시작됐다. 2022년에는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출력제어란 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조치다. 보통 전기 생산이 과할 때 시행된다. 전력망에 갑자기 많은 전기가 몰리면 정전사고가 생길 수 있어서다. 주로 전기를 외부로 보내기 어려운 제주도에서 많이 발생했다. 육지의 경우 수요가 많은 지역으로 전기를 내보내면 돼 출력제어가 발생할 일이 없었다.
이례적인 육지 출력제어는 생산·공급 불균형 탓이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설비용량은 2015년 2.5GW에서 올해 초27.4GW로 급증했다. 반면 전기를 이동시키는 송전선로는 2023년 기준 3만5596C-㎞(서킷킬로미터)다. 10년 전 3만2794C-㎞에서 8.5% 늘어나는 데 그쳤다. 10년간 태양광으로 만들 수 있는 전기가 10배가량으로 늘었는데, 정작 이를 내보낼 송전선로가 거의 확충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부족한 송전선로 때문에 지역 간 불균형까지 나타났다. 육지 태양광발전소는 60%가량이 호남에 지어져 있다. 그런데 전기를 쓰는 기업은 수도권에 밀집해있다. 호남에서 남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야 하는데 송전선로가 턱없이 부족하다. 호남권과 수도권을 잇는 345㎸ 송전선로는 단 두 개다. 이동 가능한 전기용량도 4.5GW 남짓이다. 남은 전기는 버려야 할 판이다. 현재까지 발생한 출력제어도 대다수가 호남지역에서 이뤄졌다.
송전선로가 늘어나지 못한 배경에는 주민 반대가 있다. 송전선로를 깔려면 철탑이 필수적인데 미관을 해치고 건강이 우려된다며 주민들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원래라면 9년 만에 건설돼야 하는 송전선로 건설은 평균적으로 4년 이상이 더 걸린다. 서해안과 수도권을 잇는 '북당진~신탕정' 송전망이 대표적인 예다. 2003년 공사를 시작해 2012년 끝낼 예정이었지만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지난해 말에야 준공이 완료됐다.
전기 남아도는 호남, 전력난 시달리는 수도권
송전설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친환경 에너지 보급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마련 중인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태양광 설비를 2030년까지 55.7GW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출력제어가 잦을수록 발전사업자들은 투자를 꺼릴 가능성이 크다. 업계는 1㎿ 태양광 설비용량을 3000~3500평 땅에 설치했을 경우 송전 제약으로 인한 손실이 연평균 약 40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산업 분야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반도체나 인공지능(AI) 등 첨단 고부가가치 산업은 막대한 전력을 끌어다 쓴다. 2050년까지 구축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만 해도 원전 10기에 해당하는 10GW의 전력이 필요하다. 전력을 원활히 공급하려면 타지역의 남는 전기를 끌어다 써야 한다. 부족한 송전설비를 확충하지 못하면 한쪽에서 전기가 남아돌 때 정작 산업계는 전력난에 시달리는 촌극이 빚어질 수 있다.
업계는 이런 출력제어가 올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곽영주 태양광산업협회장은 "송전선로가 부족이 심각해 출력제어는 매년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현재 구매한 태양광 발전시설도 사용하지 못하고 몇 년씩 기다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토로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전력망특별법)'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전력망특별법은 별도의 위원회를 설치해 인허가 절차를 대폭 줄이고 정부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이 골자다. 한전과 주민 사이의 갈등 중재도 위원회가 도맡기 때문에 송전설비 구축 속도를 높일 수 있다. 해당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회기 종료로 폐기됐고,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돼 현재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논의 중이다.
다만 시간이 지체된 만큼 특별법이 통과돼도 당분간 전력 수급 문제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전력 생산이 과도할 때 석탄·가스보다 친환경 에너지를 우선 구매해달라고 요구하지만 정부가 반대를 표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먼저 구매하면 소비자의 전기료가 오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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