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무역전쟁 선포
4월 이후부터 실질 적용
반도체 보조금도 재협상
삼성·SK도 타격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상호 관세 내용을 담은 대통령 각서에 서명하면서 전 세계에 무역전쟁을 선전포고했다. 가장 노골적인 협박을 받는 곳은 유럽이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유명무실해진 한국도 상황은 처참하다. 미국은 오는 4월1일로 상호 관세 조치 시행 시점을 예고했다. 1개월하고 보름의 말미를 준 셈이다. 여기에 미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 우위를 강화하기 위해 반도체지원법(CSA)까지 만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의 우려도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 백악관 집무실에서 상호 관세 부과 결정이 담긴 대통령 각서에 서명하면서 "나는 '공정성'을 위해 상호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뒤 "모두에게 공정할 것이며, 다른 어느 나라도 불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상호 관세는 각국이 미국 상품에 적용하는 관세율만큼 미국도 상대국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카롤리네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전일 "상호 관세를 부과하려는 이유는 매우 간단한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며 성경에 나오는 '황금률'을 인용해 상호 관세 조치를 정당화했다. 100%의 관세엔 100% 관세로 받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지명자가 상대국의 관세 장벽과 비관세 장벽을 두루 검토해 관세율을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트닉 지명자는 "우리는 국가별로 일대일로 다룰 것"이라며 국가별로 협상을 거쳐 차등화된 관세율을 적용할 것임을 내비쳤다. 러트닉 지명자는 "이 문제에 대한 행정부 차원의 연구는 오는 4월1일까지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해 상호 관세의 실질적인 적용은 4월1일 이후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상호 관세 자체가 미국에 유리한 협상을 위한 카드인 셈이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사전 브리핑에서 행정부가 상호 관세를 국가별로 맞춤형으로 책정할 것이라면서 "(상대국이) 미국산 제품에 부과한 관세,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불공정하고 차별적인 세금 또는 역외의 세금"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이때 부가가치세 사례는 유럽이 해당한다.
미국과 체결한 한미 FTA에 따라 상호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한국도 사정권에 포함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1기 행정부 때도 한미 FTA에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2017년에는 한미 FTA 폐기 철회 발언을 꺼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사전 브리핑에서 교역 상대국의 관세뿐만 아니라 비(非)금전적 또는 비관세 장벽이라고 부르는 것에도 "레이저빔처럼"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은 탄핵 정국이라는 내부 상황으로 인해 미국과의 교역 관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석좌는 "이것은 전문가들이 상향식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국가 정상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이날 동반 강세로 장을 마감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0.77% 올랐고 S&P500지수는 1%가량 뛰어 전고점에 근접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1.5%나 뛰었다. 시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카드를 내민 데 따라 이전 캐나다·멕시코와의 관세 카드를 통한 무역협상 사례에 근거한 학습효과로 일부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호 관세가 즉시 적용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투자심리가 일부 개선된 것이다. 1월 미국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지만, 직전 달 대비로는 둔화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와 함께 미국은 여타 법 개정까지 동원하며 미국 중심 글로벌 산업 재편을 위한 전방위적 압박에 나서고 있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CSA 보조금 재협상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일부 반도체 보조금 지급이 지연될 수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CSA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반도체 기업에 직접 보조금 390억달러와 연구개발(R&D) 보조금 132억달러 등 5년간 총 527억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재협상에 나서는 이유는 일부 기업이 보조금을 받은 뒤 중국 등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됐다. 한 소식통은 백악관이 CSA 보조금을 받은 뒤 중국 등 다른 국가 진출 계획을 크게 발표한 기업들에 불만을 느낀다고 전했다. 해당 법안에 따라 미국 투자를 하고 보조금을 받기로 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중국에 제조 시설을 두고 있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데이비드 아이작스 반도체산업협회 대관 담당 부사장은 "제조 인센티브와 연구 프로그램이 모두 중단 없이 진행돼야 한다"며 "트럼프 행정부 구성원들과 협력해 (CSA의) 프로그램 요건을 간소화하고 반도체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강화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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