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국립 대성당서 국가 장례식
전·현직 대통령 5명 한 자리에 모여
바이든, 트럼프 겨냥 '뼈있는' 추도사
"카터의 영속적 속성은 인격의 힘"
미국의 39대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국가장례식이 9일(현지시간) 워싱턴 D.C.의 국립 대성당에서 치러졌다. 이날 장례식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전·현직 대통령 5명이 한자리에 모여 카터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카터 전 대통령의 국장은 이날 오전 예포 21발과 함께 국회의사당에 안치돼 있던 관을 성당으로 운구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오전 10시부터 2시간 정도 진행된 장례식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카터 전 대통령의 손자인 조시 카터, 제러드 포드 전 대통령의 아들인 스티븐 포드, 월터 먼데일 전 부통령의 아들 테드 몬데일 등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2006년 타계한 포드 전 대통령의 아들인 스티븐 포드는 아버지가 생전에 쓴 추도사를 대독했다. 그는 "지미, 재회를 기대한다"며 "우리는 할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 포드 전 대통령은 카터 전 대통령의 전임자로 정치적 경쟁자였으나, 이후 서로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약속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됐다. 2006년 포드 전 대통령이 별세했을 때도 카터 전 대통령이 추도사를 읽었다.
트럼프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를 앞두고 극도로 분열된 미국 정치 지형을 꼬집는 '뼈있는' 발언들도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카터의 영속적인 속성은 그가 가진 인격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카터 전 대통령이 "물과 전기가 없는 집에서 태어나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며 "어떤 직함이나 정치도 세상에 봉사하고 변화시키려는 그의 사명을 꺾진 못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바이든 대통령이 그동안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고, 정치적 이익을 위해 분열을 조장한다고 비판해 온 트럼프 당선인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NYT)는 "바이든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연설 중 하나를 통해 오늘날의 정치를 간접적으로 비판했다"고 평가했다.
백악관에서 카터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스튜어트 아이젠스타트는 추도사에서 "그의 많은 법안이 양당의 지지를 받아 통과됐다"며 "이는 오늘날의 극도로 양극화된 분위기에서는 촌스러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장례식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오바마 전 대통령은 물론 미셸 오바마 여사를 제외한 전·현직 영부인이 모두 자리했다. 트럼프 당선인과 오바마 전 대통령은 옆자리에 앉아 행사 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은 공화당 상징색인 빨간색 넥타이 대신 파란색 넥타이를 착용했다. 이를 놓고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당선인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행사에서 그의 상징인 감색 정장, 흰색 셔츠, 빨간색 넥타이를 포기한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라며 "지미 카터의 장례식에서 대통령들의 단합을 보여주는 이례적인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AP통신 등은 이날 장례식에 참석한 전·현직 대통령이 행사 전 비공개로 회동했으며, 이는 최근 극도로 분열된 미국 정치에서 목격된 이례적인 모습이라고 전했다.
이 밖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내외, J.D. 밴스 부통령 당선인,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 미국 상·하원 의원 등도 장례식에 참석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9일 향년 100세로 타계했다. 재선에 실패해 정계에서 물러났지만, 퇴임 후 세계 평화와 인권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며 20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국장이 끝난 후 카터 전 대통령의 유해는 조지아주 프레인스로 옮겨졌고, 마리나타 침례교회에서 마지막 비공개 장례식이 치러진다. 이후에는 2023년 11월 별세한 부인 로잘린 여사가 잠들어 있는 자택 근처 가족 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을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했고, 연방정부 기관과 뉴욕증시도 문을 닫았다.
뉴욕(미국)=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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