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어 국정원도 '북한군 전투 참여' 확인
레드라인 넘은 北…정부, 단계별 대응 검토
'가치' 바이든이냐, '종전' 트럼프냐 고민
미국에 이어 우리 정부도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전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검토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정부가 밝힌 '단계별 대응 조치'에 따라서다. 다만, 우크라이나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와 전쟁을 빨리 끝내겠다는 차기 트럼프 행정부 사이에서 정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국가정보원은 하루 전인 13일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은 지난 2주간 쿠르스크 지역으로 이동해 전장 배치를 완료했다"며 "이미 전투에 참여 중인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국정원 관계자는 "추가적인 관련 첩보와 정보를 수집·분석 중이다"고 덧붙였다.
앞서 미 국무부가 '전투 참여' 사실을 먼저 확인한 바 있다. 베단트 파텔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12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북한군이) 러시아군과 함께 전투 작전에 관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국방부·외교부 측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입장만 냈지만, 정보 당국이 사실이라고 확인한 것이다.
그간 우리 정부는 북한군의 실질적인 전투 참여, 즉 전장 투입을 일종의 '레드라인'으로 봤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북한군이) 현대전에 대한 경험을 쌓으면 우리 안보에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북한군의 관여 정도에 따라 단계별로 지원 방식을 바꿔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선 지난달 24일 한·폴란드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도 관련 질문을 받고 "대원칙으로서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는데, 더 유연하게 북한군의 활동 여하에 따라 검토해 나갈 수 있다"고 했다.
북한군의 전투 투입을 정부 차원에서 공식 인정한 만큼 '무기 지원'에 대한 검토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방어용 무기를 우선 지원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전투기를 요격할 수 있는 천궁Ⅰ, 탄도미사일까지 요격하는 천궁Ⅱ, 우크라이나가 지원을 요청했던 재밍 드론 등 방공체계가 거론된다. 이 미사일 체계들은 공격용 전환도 가능하다. 전쟁 장기화로 미국의 155㎜ 포탄 재고량이 떨어지는 상황이어서 우리가 포탄을 우회 지원하는 방안도 언급된다.
변수는 '트럼프'다. 지난 6일 당선이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전쟁을 끝내겠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동맹과 가치를 우선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와 달리 '미국 우선주의'에 바탕을 둔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과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짙다.
이 경우 우리 정부는 지금의 미 행정부와 발을 맞춰야 할지, 차기 행정부를 고려해 움직일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섣불리 살상무기를 지원했다가, 내년 1월 들어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빠른 종전을 위해 개입하기 시작하면 난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다만 '전쟁 종식'을 강조해온 트럼프 당선인의 방침이 당장 실현될지 물음표를 던지는 시각도 많다. 선거 기간 표심을 끌어오기 위한 일종의 '유세용 발언'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권 이양 과정에서 현 행정부의 기조에 따른 정책 조율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1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그간 '24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을 정도로 종전 의지를 보였다"면서도 "전쟁은 일방적으로 한 나라의 결정에 따라 끝나는 게 아니고, 상대방이 있고 당사국 간 이해관계도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선거 유세 기간 정치적 언급과 실제 정책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 국익을 고려한다면 향후 4년간의 한미관계가 달린 신 행정부의 의중을 고려해 움직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은 한반도의 남북 대립이 유럽에서 '대리전' 성격으로 재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최후의 보루'와 같다.
정부도 북한군 파병에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과 달리, 무기 지원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 혼자 움직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제사회, 특히 우리의 가까운 동맹 미국과 충분히 협의해가면서 진전시킬 과제"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지원 방향의 변화에 대해서는 "결정된 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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