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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토크]'반도체 보릿고개'는 왜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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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변동 민감한 메모리 반도체
쌀·밀·구리처럼…'원자재' 특성

수개월째 이어진 '반도체 보릿고개'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수출액도 감소하면서 국내 경제에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졌습니다.


보릿고개의 근본적 원인은 반도체의 가격 불안정성 때문입니다. 특히 D램(DRAM), 낸드플래시 등 국내에서 주로 생산되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지난 수개월 간 폭락을 거듭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독 메모리만 가격이 불안정한 걸까요?

4년 만에 1/4 토막…유독 불안정한 메모리 가격
D램 현물가 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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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D램(DDR4 8Gb 기준)의 시장거래가격은 1.81달러로 집계돼 2016년 이후 처음으로 1달러대로 주저앉았습니다. 2018년 6월만 해도 D램은 8.19달러에 거래됐습니다. 약 4년 새 1/4 이하 가격으로 내려간 겁니다.


D램이나 낸드를 주로 판매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이번 가격 하락에 직격타를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4분기에 삼성전자의 영업익은 4.31조원에 불과했고, 하이닉스는 적자 전환했습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최대한 운영 비용을 아끼고 투자 계획도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다른 상품처럼 반도체도 시장 내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받습니다. 지금처럼 전반적으로 IT 산업의 불황이 예상되는 때엔 반도체 가격도 조정됩니다. 하지만 메모리의 가격 낙폭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인텔이나 AMD의 중앙처리장치(CPU) 등 마이크로프로세서보다 훨씬 심합니다. 왜 같은 반도체 제품군 안에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요.

'산업의 쌀' 메모리, 가격 결정도 원자재와 비슷
쌀과 D램 [사진출처=연합뉴스]

쌀과 D램 [사진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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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가 불황에 민감한 이유는 그 특성에 있습니다. 흔히 메모리 반도체를 두고 "산업의 쌀"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현대 산업에 핵심적인 부품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메모리는 비유적 의미뿐만 아니라, 가격 결정 측면에서도 실제 쌀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쌀, 콩, 옥수수, 구리 등 대량으로 유통·소비되는 곡물이나 금속 자원을 두고 우리는 '원자재(commodity)'라고 합니다. 원자재의 가장 큰 특징은 수요와 공급에 따른 '사이클(cycle)'이 있다는 점입니다. 경기가 좋아 기업이 특정 곡물과 금속을 대량으로 사들이면 원자재 가격이 올라갑니다. 반면 불황이 찾아와 재고가 쌓이면 가격은 내려갑니다. 가뭄, 전쟁 등 생산·유통 이슈가 벌어질 때도 가격이 변동합니다.


비슷하게 메모리 가격도 사이클에 따라 조정됩니다. 예를 들어 D램 가격이 최고점을 찍었던 2018년은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이 역대 최고 실적을 내놨던 '슈퍼 사이클'로 기억됩니다.


메모리는 '가격 경쟁력' 싸움
삼성전자 화성 공장 [사진출처=연합뉴스]

삼성전자 화성 공장 [사진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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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도체 산업 분석의 대가이자 저술가인 '짐 핸디'는 지난해 자신의 블로그에 메모리의 이런 특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메모리는 약 2년 주기로 사이클을 겪습니다.


첫 번째로 가격이 상승할 때 기업들은 모두 생산량을 늘리며, 이 때문에 2년 뒤 공급이 수요를 뛰어넘어 점차 재고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결국 마지막엔 보릿고개가 찾아오고 반도체 기업들은 수요가 회복할 때까지 생산량을 늘리지 않습니다.


메모리는 산업 특성상 감산이 매우 힘들기 때문에 사이클이 더욱 선명합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탑티어 업체 간 제품 격차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가격이 경쟁력을 결정합니다. 즉, 대량 구매자(주로 IT 기업)는 삼성전자의 D램이든 하이닉스의 D램이든 더 싼 것부터 사들인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메모리 기업들은 최대한 제품을 많이 만들어 수율(투입한 양 대비 양품이 나오는 비율)을 높이고 단가를 낮춰야만 합니다. 감산을 하거나 투자를 줄이면 경쟁사에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고 퇴출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메모리 기업들은 설령 적자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감산은 언제나 '최후의 카드'로만 남겨둡니다.


이런 점이 메모리를 다른 반도체보다 훨씬 원자재에 더 가까운 제품으로 만듭니다. 엔비디아, AMD, 인텔 등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만드는 기업들은 '고급형' 제품과 '보급형' 제품을 세분화하고, 제품 간 성능 경쟁을 벌임으로써 브랜드 가치를 강화하기에 가격 방어도 수월합니다.


반면 메모리는 브랜드의 존재감이 희미하고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를 겨루기 때문에 사이클의 영향을 더 크게 받습니다. 마치 밀이나 옥수수가 어디에서 재배되든 상관없이 경쟁사보다 가격만 낮으면 되는 것과 유사합니다.


생성 AI가 구원투수 될 수도

반도체 보릿고개는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핸디에 따르면, 메모리 기업들은 감산을 최대한 회피하므로 수요가 재차 공급을 따라잡을 때까지 제 살을 깎아 먹으며 견디는 '치킨 게임'이 벌어집니다.


실제 2007년 첫 치킨 게임 당시 시장 점유율 2위였던 독일 D램 업체 키몬다가 파산해 공급 과열 문제가 해소됐습니다. 2010년엔 일본, 대만의 D램 업체들이 파산하고 삼성전자·하이닉스·미 마이크론이라는 '빅 3 체제'가 공고화하면서 지금의 시장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새 보릿고개가 얼마나 혹독할지,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시장조사기업 '가트너'의 경우 글로벌 반도체 매출은 올해 3.6%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조기에 수요가 회복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오픈AI의 '챗GPT'를 포함한 생성 인공지능(AI) 열풍이 불면서 많은 기업이 AI용 컴퓨터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I 프로그램은 주로 GPU 등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통해 처리되지만,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 메모리 장치에도 상당한 자본을 투입해야 합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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