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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일본도 달라질 수 있어, 진실 직시한다면…"

최종수정 2022.04.29 11:40 기사입력 2022.04.29 11:40

'파친코' 하세가와 역 재일교포 배우 김인우
일본인 배역 단골…주로 조선인 탄압·착취 연기
"좋은 영화·드라마로 인식 고칠 수 있다고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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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TV+ ‘파친코’에서 선자(김민하)의 남편 이삭(노상현)은 형무소에 수감된다. 죄목은 불경죄. 선자는 내막을 안다는 하세가와(김인우)를 찾아간다. 일본 천황을 등지고 공산주의를 꿈꾸는 일본인이다. 동지들이 잡혀가자 숨어 지낸다. 선자를 마주하고는 차분한 어조로 설명한다. "다른 나라 친구들과 힘을 합쳐 평등하게 돈을 버는 세상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선자는 버럭 화를 낸다. "남정네들이 그 짝 꿈만 좇고 있으믄 밥상에 묵을 거는 누가 올리고, 한겨울에 얼라들 옷은 어데가 구해 입힙니까?"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배우 김인우는 대본을 읽고 탄복했다. 그는 재일교포 3세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일본인 배역을 수없이 맡았다. 냉혹한 현실 앞에서 무너지는 이상은 처음 그렸다. 주로 조선인을 탄압하거나 착취하는 악랄한 모습을 연기했다. ‘미스터 션샤인’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해 ‘군함도’ 시마자키 다이스케 소장, ‘허스토리’ 재판장, ‘박열’ 미즈노 렌타로 내무대신, ‘동주’ 고등형사 등이다.

지난 25일 아시아경제를 만난 김인우는 "‘파친코’에 색다른 시각이 담겨 반가웠다"며 "재일동포를 향한 시선이 따뜻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근래 차별을 당한 경험은 없다. 한국에 정착한 2008년에는 여러 번 있었다. 초면인 어르신은 다짜고짜 시비를 걸었고, 택시기사는 승차를 거부했다. 김인우는 상실감을 느꼈지만 이해하고 포용했다. "잘 모르셔서 그랬던 거다. 재일교포를 나라를 버리고 도망간 사람들로 알고 계시더라. 차근차근 알려드리면 된다. 좋은 영화와 드라마로."


그는 마음을 두고 연기한 배역에서 굳건한 믿음을 얻었다. ‘동주’ 고등형사다. 윤동주와 송몽규를 죄인이라 여기고 강압적으로 대하지만 취조하면서 진실에 눈을 뜬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인간미를 회복한다. "완성본에는 빠졌는데, 동생이 전쟁터에서 죽어 슬퍼하는 장면이 있었다. 윤동주와 송몽규를 똑같은 전쟁 피해자로 볼 여지가 있었던 거다. 일본도 그렇게 달라질 수 있다. 가짜가 아닌 진실을 직시한다면."


‘군함도’에서 시마자키 다이스케 소장을 연기한 배우 김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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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차별을 많이 당했나.

"모든 재일교포가 겪었을 거다. 1983년에 배우가 되려고 센다이에서 도쿄로 넘어가 방을 구했다. 권리금을 주고 짐까지 부쳤는데 부동산에서 갑자기 입주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주인이 혐오한다더라.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면허증에서 한국 국적만 보면 손사래를 쳤다.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일했다. 다행히도 버블 경제 시대라서 일손이 부족할 때였다. 이삿짐 인부, 공사장 잡부, 요리사, 가구점 직원…. 연예기획사에서 잡일도 했다. 배우가 되고 싶어 자처한 일이었다. 분명한 소득은 있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꿈’ 등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한국 국적을 끝까지 고수한 이유는 무엇인가.

"친조부와 외조부 모두 일제강점기 강제노동 피해자시다. 탄광에서 일하셨다. 당시 겪으신 일들을 들으며 자랐다. 외조부는 센다이의 유일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학교 공동설립자시다. 모국어와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애국심과 자부심을 키웠지만 공부하기는 힘들었다. 집이 있던 이시노마키에서 통학하는데 왕복 다섯 시간이 걸렸다. 또래 세대 상당수는 20대에 국적을 일본으로 바꿨다. 연예계에도 그런 분들이 꽤 많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외면받으니까 계속 숨긴다."


-정체성을 숨기는 현실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라에서 침략의 역사를 감춘다. 교과서에 관련 내용이 한두 줄 정도로 기술됐다. 언론은 8월 15일이 되면 원자폭탄 희생자를 기리는 보도만 쏟아내고. 전쟁이 왜 벌어졌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일부는 침략을 부정하기도 한다. 자민당이 집권하면서 그런 부류가 많아졌다. 일본 정부는 교묘하게 이용한다. 비판 여론이 강해지면 어김없이 한일 문제를 들먹인다. 수없이 반복했는데 아직도 눈치를 채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서 안타깝다."


‘박열’에서 미즈노 렌타로 내무대신을 그린 배우 김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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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본인 배역을 그리며 걱정한 적은 없나.

"‘허스토리’에서 재판장을 연기하며 일본에서 활동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세상에 꼭 나와야 하는 작품이라서 연연하진 않았다. 잘 만들어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래서 일본어 교육까지 맡았다. 일본인들에게 연기가 어색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았다. 배우들이 부단히 노력한 덕에 그런 지적을 피할 수 있었다."


-한국에도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은 존재하는데.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처음 왔을 때는 독도 같은 심정이었다. 두 나라에서 모두 외국인 취급을 받는 현실이 슬펐다. 영화 ‘깡철이’에서 아키토를 연기하며 그런 마음을 표현한 적이 있다. ‘재일교포 고향은 바닷속이구나’라는 대사를 고안해 연기했다. 완성본에 실리진 않았다. 현재 출연 중인 뮤지컬 ‘더 나우’로 아쉬움을 씻고 있다. 대사에 개인적 경험을 많이 반영했다. 재일동포의 개념을 정확히 알리며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사실적으로 풀어냈다."


-‘파친코’ 같은 작품이 이해와 포용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너무나 큰 축복이다. 배우 강유미의 소개로 출연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배경의 작품은 대개 만행을 고발하거나 핍박받은 세월을 재현한다. ‘파친코’는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들어서 새로웠다. 촬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일본어 대사가 문어체였다. 카메라도 컷이 아닌 신 단위로 연기를 담아냈고. 화면 크기나 각도와 관계없이 긴 호흡을 스무 번 넘게 반복했다. 끝나고서 녹초가 됐다."


‘동주’에서 고등형사를 연기한 배우 김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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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 뿌듯할 것 같다.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이미 ‘허스토리’에서 체감했던 마음이다. 일본군 위안부 자료를 수없이 찾아봤다. 단순한 정보만 믿고 뛰어들면 곤란하니까. 역사를 다루는 만큼 지문 하나조차 몇 번씩 확인했다. 다른 제작진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한국 영화·드라마가 잘 되는 비결일 수 있다. 주연부터 사명을 충실히 이행한다. ‘명량’을 촬영할 때 최민식 형님께서 자기 촬영분을 찍으려고 종일 배 위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봤다. 대기실에 가시지도 않고 단역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셨다. 한 장면도 연기하지 못하시고 돌아가시길래 ‘괜찮으시냐’고 물었더니 ‘다 같이 하는 건데 뭐’라고 말씀하시더라.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따뜻한 인간미가 한국영화를 일으킨 또 다른 동력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그런 기운을 가진 배우이자 사람이 되고 싶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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