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마땅한' 사람만 골라 죽이는 살인마 K와
K를 쫓는 여성 탐정 이야기

드라마 '구경이'/사진=JTBC 제공

드라마 '구경이'/사진=JTBC 제공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의심스러운데?"


하루가 멀다하고 여성들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들려오는 세상. JTBC 드라마 '구경이'가 그리는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현재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구경이는 자신 주변의 모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다.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별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자동으로 그녀에게 따라붙는다. 경이가 의심하는 이유는 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진 탓도 있지만 단지 그것뿐만은 아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믿고 안심할만한 구석이라곤 없기 때문에 그녀는 의심한다.

경이는 몇 년 전 남편 성우를 잃었다. 성우가 교사로 근무한 여자 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죽었고, 경이는 이 사건을 수사한 담당 형사였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소문이 난무했다. 이 학생이 죽기 전 성우와 함께 있는 걸 본 사람이 있다. 경이는 이 사건이 성우와 연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나아가 그가 가해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성우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그 뒤로 경이는 자신과 세상 사이에 벽을 치고 숨는다. 자신의 과도한 의심 때문에 성우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경이는 일을 그만두고, 쓰레기더미가 한가득 쌓인 집에서 술과 게임만 곁에 둔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그러나 그 뒤에도 경이는 문득 궁금하다. 성우가 진짜 범인인지, 아닌지.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지. 경이는 자신의 의심이 옳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드라마 '구경이'/사진=JTBC 제공

드라마 '구경이'/사진=JTBC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


그런 그녀 앞에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존재가 나타난다. 죽어 마땅한 사람만 골라 죽이는 살인자 K. K의 살인에는 이유가 있다. 성범죄자, 불법 촬영물 유포자,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갑질하는 자 등 타인에게 죽기보다 고통스러운 상처를 주고 버젓이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K의 살인 대상이다. K의 살인에는 원칙이 있다. 사고사나 자연사, 극단 선택으로 위장해 살인사건으로 보이지 않게 하고, 그 살인 대상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을 만한 사람이 용의자가 되지 않게 하는 것. 살인은 명백한 죄임에도 K의 이런 원칙은 살인 행위를 어느 정도 정당화하는 기제가 된다. K는 자신의 살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살인에 자신감과 확신을 보인다. 자신이 누군가를 심판할 자격과 역량이 충분하며, 다른 이들도 자신의 이런 능력에 고마워할 거라 믿는다.

K의 정체는 극 초반에 밝혀진다. 경이의 남편인 성우의 제자이자 20대 여성인 송이경. 이경은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몰래 죽인 수위 아저씨를 알코올 중독으로 위장해 사망하게 한 것으로 처음 살인을 시작했다. 친구가 "고양이를 죽인 사람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무심코 말한 것이 계기였다. "그럼 내가 죽여줄까?"라고 답한 이경은 그대로 실행했고, 죽어 마땅한 사람을 자신 손으로 없앴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의 목적은 범인인 K가 누구인지 밝혀내는 데 있지 않다. 표면적으로 무모한 살인을 저지르는 이경과 이를 막으려는 경이의 추격전, 더 깊이는 의심과 확신이라는, 두 인물이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의 충돌을 그린다.


경이와 이경은 극이 흘러가는 내내 대립하지만, 드라마는 의도적으로 둘을 데칼코마니처럼 겹쳐놓는다. 이름부터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사람의 관계성이 드러난다. 성우는 종종 경이에게 이경과 닮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경이와 이경은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제는 비슷한 사건이 너무도 많아 웬만해선 이슈조차 되지 않는 여성과 약자를 대상으로 한 흉악범죄가 난무한 세계.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충분치 않은 세계를 경이와 이경은 불신한다. 이경은 그래서 자신이 직접 나서서 가해자를 처단하기 시작했고, 경이는 자신의 주변을 끊임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됐다. 경이는 남편조차 믿지 못했고, 자신을 가장 믿고 따르는 후배 제희에게도 간혹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 여자'라는 비난이 일어도 경이는 좀처럼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드라마 '구경이'/사진=JTBC 제공

드라마 '구경이'/사진=JTBC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


그러나 경이는 이경과 다르다.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더라도, 경이는 이경의 살인 행위에 동조하지 않는다. "나라고 죽이고 싶은 놈 하나 없었는 줄 알아? 멍청함과 오만함. 사람 죽이려면 그 두 개가 필요한데, 나한텐 그 필수 요소가 없더라"고 경이는 말한다. 경이의 꿈속에서 성우도 이런 말을 한다. "K는 당신이랑 똑같아. 그런데 K는 아직 어리고 혼자잖아." 확신에 사로잡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적 복수를 저지르는 이경이, 경이에겐 멍청하고 오만한 철부지의 도 넘은 장난으로 보일 뿐이다. 사실 이경은 종종 원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사소한 이유로 살인을 하기도 한다. 결국 '죽을만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는 원칙도 살인이 거듭될수록 허술한 자의적 해석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물론 경이가 이경의 살인 대상이 되는 죽어 마땅한 사람들에게 분노하지 않을 만큼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을 향해 분노하는 것과, 물리적인 방식으로 고통을 주거나 살인을 저지르면서 또 다른 가해자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구경이'는 말한다. 이경이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던 조력자들은 그렇기에 끝에서 결국 이경을 배신한다. 불법 촬영물 피해자이자 이경의 조력자였던 미애는 "더는 사람 못 죽이게 막아주세요. 누굴 죽이겠다는 마음 품고 사는 거, 그거 진짜 못 할 짓이거든요"라며 이경이 살인을 멈추게 도와달라고 경이에게 부탁한다.

AD

경이는 K를 잡는 전담반 B팀이 해산한 뒤에 사설탐정 사무소를 차린다. 세상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사건과 잡아야 할 나쁜 사람이 많다는 뜻일 테다. 더불어 경이의 의심도 앞으로 계속될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이는 더이상 세상을 등지고 자신만의 세계에 숨거나, 자신을 믿어주는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지 않는다. 누구를 쉽게 믿기 어려운 세상이란 것은 변함없지만, 사람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젠 알기 때문일 거다. 남편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은둔형 외톨이가 된 경이를 다시 밖으로 끄집어낸 건 제희였다. 어쩌면 이경이도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살인을 멈춰줄 누군가를 간절히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