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남녀 인골 두 구 이어 성인 여성 인골 한 구 추가 발견
"성벽 쌓아 올리기 전 인신공회 거행 증거"
축조 시기 4세기 중엽 "뛰어난 토목 기술 집약돼"

경주 월성 인골은 신라 성벽 제사 희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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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은 신라 왕성이 있던 고대 유적이다. 2014년 12월 개토제(開土祭)를 시작으로 7년째 발굴 조사되고 있다. 학계는 서쪽 문터에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2017년 키 160㎝ 안팎의 50대 남녀 인골 두 구와 토기 네 점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신라가 사람을 제물로 바치고 그 위에 성벽을 조성한 인신공희(人身供犧) 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7일 이곳에서 성인 여성 인골 한 구와 동물뼈를 추가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인골은 이전 두 구와 달리 곡옥 모양의 유리구슬을 엮은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다. 키는 약 135㎝로 추정된다. 동물뼈는 말, 소 등 대형 포유류의 늑골 부위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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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측은 "월성 기초부 공사를 마치고 성벽을 거대하게 쌓아 올리기 전에 성벽과 문지가 견고하게 축조되길 바라는 인신공회가 거행됐음을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1985년과 1990년 시굴·발굴조사에서도 북서쪽 방향으로 약 10m 떨어진 곳에서 출처 불명의 인골 스무 구 이상이 확인됐다"라며 "이들 또한 성벽 축조 과정과 관련해 묻힌 것으로 파악된다"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월성의 축성 시기와 토목 기술 등도 파악됐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월성의 축조 연대는 파사왕 22년(101년)이다. 하지만 유물 전수 조사와 가속질량분석기(AMS·목재, 유기물질 등의 탄소를 측정해 과거 연대를 검출하는 방법) 연대 분석에서 축조 시기는 250년 뒤인 4세기 중엽부터 5세기 초반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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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성에는 다양한 토목 기술이 집약돼 있었다. 연약한 지반을 보강하기 위해 성벽 기초부 공사에 두 가지 작업을 선행했다. 일정 간격으로 나무 말목을 박는 지정(地釘) 공법과 목재·식물류를 층층이 깐 부엽(敷葉) 공법이다. 성벽 몸체를 만드는 체성부 공사에서는 재료로 볏짚, 점토 덩어리, 건물 벽체 등을 사용했다. 성벽의 크기는 너비 약 40m, 높이 약 10m로 추정된다. 연구소 측은 "신라인들의 뛰어난 토목 기술과 당시 왕성의 웅장함을 그려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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