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당신은 그 장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를 때가 있지 않으신지요. 이는 영화가 우리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는 현실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영상 속 한 장면을 꺼내 현실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전해드립니다. 장면·묘사 과정에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루카' 스틸 이미지./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루카' 스틸 이미지./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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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경계가 뒤엉켜 있는 공간입니다. 정상이라고 지칭되는 어떤 기준은 '다름'이라는 경계를 만들고, 이에 부합하지 않는 존재는 도태되는 사회. 외면하고 싶지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은 정상이라 불리는 수많은 기준이 쌓아 올려져 만들어진 세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갑니다.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이들은 이상하고 피해야 할 것으로 여겨져 사회의 논의에서 배제되고, 그 존재는 끊임없이 부정당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들의 존재가 낯설고 이질적으로 생각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존재를 부정한다고 해서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숨어있을지언정 그들은 분명히 이곳에 있고,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숨 쉬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디즈니·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 '루카'는 지워진 이들의 존재를 '바다괴물'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영화입니다. 바닷속에 사는 루카는 어느 날 육지에 올라섰을 때 자신의 모습이 인간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호기심을 품습니다. 그러나 인간 세상은 루카에겐 알고 싶은 만큼이나 두려운 곳이기도 합니다. 인간들은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바다괴물을 징그럽고, 끔찍하게 여기죠. 이 때문에 바다괴물들은 눈에 띄지 않는 바닷속 깊은 곳에 숨어 존재를 숨긴 채 살고 있습니다. 사실 바다괴물이라는 명칭도 인간의 관점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바다괴물들에겐 자신들을 해치는 인간들이 '육지괴물'이지요.

육지는 목숨을 잃을 만큼 무서운 곳이라는 경고를 들으며 자란 탓에 루카는 쉽게 바다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영화 속에서 바다의 표면은 루카가 나가려 애써도 절대 뚫리지 않는 '막'처럼 묘사되는데, 즉 해수면은 루카에게 넘어가기 힘든 어떤 경계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루카' 스틸 이미지./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루카' 스틸 이미지./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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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루카를 바닷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알베르토입니다. 같은 바다생물이자 육지 생활 선배이기도 한 알베르토는 이제 막 육지에 올라선 루카에게 걷는 법부터 가르칩니다. 알베르토는 어떤 일을 할 때 루카가 망설이면 "닥쳐 브루노!"를 외치면서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루카가 알지 못했던 세상의 다양함을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둘은 갖고 싶은 스쿠터 '베스파'를 얻기 위해 인간 마을의 철인3종경기 '포르토로소 컵'에 출전하는 모험을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장르 영화가 그렇듯 '루카'에도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당이 등장합니다. 자칭 마을의 스타이자 포르토로소 컵의 챔피언인 에콜레는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루카와 알베르토의 차림새를 지적하면서 악행을 일삼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주인공의 앞길을 방해하는 데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합니다. 에콜레의 발언들은 타당한 근거를 가진 비판이 아닌 무차별적 비난에 가깝습니다. 이런 발언들은 설득력이 없고 공허하게 느껴질 뿐이지요.


무엇보다 이 영화는 악당을 처단하고, 승리를 이뤄내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보단 루카와 알베르토가 스스로의 정체성과 꿈을 찾는 과정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물에 닿으면 바다괴물이 되고, 육지에선 인간으로 변한다는 설정은 특정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소수자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루카와 알베르토, 줄리아가 포르토로소 컵 출전을 위해 꾸린 팀명이 '언더독'인 것도, 이들이 주류에 속하지 못한 이들을 대변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영화의 중반부는 인간 마을에 온 루카와 알베르토가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이 과정을 통해서 루카는 바다괴물이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꿈을 점차 구체화할 수 있게 됩니다.


영화 '루카' 스틸 이미지./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루카' 스틸 이미지./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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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루카와 알베르토가 바다괴물이라는 사실 때문에 혐오나 폭력 등을 겪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그리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떤 일을 할 때 바다괴물에겐 항상 제약이 뒤따른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묘사합니다. 루카는 인간들이 다니는 학교에 가고 싶어도 정체가 탄로 나는 것을 걱정해야 하고, 이 때문에 알베르토와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국적·인종·성별·나이·장애·성정체성 등의 이유로 많은 소수자들이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고, 존재에 관해 끝없는 고민을 감내해야 하는 것처럼요.


알베르토가 사람들 앞에 정체를 처음 공개했을 때도, 루카는 자신의 정체까지 밝혀지게 될까 봐 나서서 편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즉 소수자들이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폭력의 크기를 묘사하는 것보다, 이들이 소수자이기 때문에 무엇을 지키지 못하고 버려야만 하는지에 관해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포르토로소 컵의 자전거 경주에서 달리던 루카는 갑자기 멈춰 서게 됩니다. 선두를 달리며 결승선을 코앞에 뒀지만 비가 오면서 정체를 들킬 위기를 맞습니다. 우산을 들고 도와주려던 알베르토마저 넘어져 바다괴물로 변해버리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잡혀갈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뭘 하던 머뭇거렸던 루카는 이번엔 망설이지 않아요. 바다 밖을 두려워했던 루카를 알베르토가 육지로 이끌었던 것처럼, 루카는 알베르토의 손을 잡고 빗속으로 몸을 던지는 선택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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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포용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전히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영화는 차이를 이유로 누군가를 향해 가해지는 비난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고 꼬집고 있습니다. 에콜레가 했던 혐오의 말들이 무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에 비해 차별과 혐오에 맞서 자신과 소중한 사람을 지킨 언더독들이 관객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척 강하고 견고한 것 같습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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