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 돈키호테가 광인? 가장 미친짓은 꿈을 포기하는 것이라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이상에 도전하는 모습 유쾌하게 그려내
세르반테스·알론조 오가는 조승우 눈길
정원영 산초 연기, 여러 감정 느끼게 해
돈키호테 결말까지 희망적으로 재해석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얼마 전 국내 한 대기업에 다니던 지인이 퇴사하고 평소 꿈꾸던 작곡가가 되겠다며 비트메이커로 전향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직장조차 구하지 못해 목숨까지 내던지는 세상에서 멀쩡한 직업을 그만두다니…. 금수저도 아니면서….
냉소와 함께 흘려보낸 기억이 최근 되살아나면서 스스로 부끄러웠다.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의 소설 ‘돈키호테’가 원작인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감상하고 나서다. 기사 돈키호테로 자칭하며 가슴 속에 품은 이상을 향해 유쾌히 도전하는 노인 알론조. 그의 모습은 음악의 길로 떠난 지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극중 알론조를 연기한 세르반테스가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는 것이라오"라고 외칠 땐 왠지 뜨끔했다.
교회에 과세해 신성 모독죄로 감옥까지 끌려온 작가 세르반테스. ‘맨 오브 라만차’는 그가 종교재판에 앞서 죄수들과 함께 공연하는 극 중 극 형식을 띠고 있다. 배우 조승우(41)가 세르반테스를 연기하다 돌연 알론조가 되는 등 종횡무진 오가는 모습이 더 흥미롭다.
알론조 곁에는 늘 그를 따르는 산초가 있다.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돌진하거나 여관 주인을 성주로 여기는 등 알론조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도 산초는 말리지 않는다. 오히려 거들기까지 한다. 소설에서 돈키호테를 접했을 때 시종이라는 중세적 설정 때문에 산초가 그저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배우 정원영(36)의 산초 연기를 보면 다른 감정들이 전해진다. 산초는 알론조를 통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뛰쳐나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오늘날 사람들이 온라인게임 속 캐릭터에 과몰입하듯 산초도 당시 캐릭터 ‘돈키호테’를 플레이한 일종의 게이머가 아니었을까.
조승우가 세르반테스를 연기할 때 배경이 되는 스페인 지하감옥. 이곳 사람들에겐 이름이 없다. 그저 ‘죄수’로 통칭된다. 차별받고 배제된 ‘동일성’의 집단이다. 세르반테스는 죄수들에게 이름과 역할을 부여한다. 동일성을 해체하고 하나의 주체적 인간으로 복원한다.
알론조는 여기에 더해 여관집 하녀 알돈자(최수진)를 고귀한 여인 둘시네아로 칭한다. 그만의 가치를 불어넣는 것이다. 해체주의적이고 포스트모더니즘적 알레고리다. 소설이 중세적 이상주의를 꼬집었다면 뮤지컬은 현대적 관점에서 근대를 고발하고 이상주의의 복원을 시도하는 듯하다.
알론조를 비정상적인 광인이라 여겨 격리하려는 행위는 합리·이성·보편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근대의 폭력성에 대한 은유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가 저서 ‘광기의 역사’에서 지적했듯 중세까지만 해도 인류의 역사는 이성뿐 아니라 광기와도 함께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 들어 ‘광인’을 추방하거나 감금했다. 근대에 와서는 광기가 질병이라며 정신병원을 만들었다. 극중 알론조의 조카딸 안토니아와 그의 약혼자인 의사 카라스코가 알론조를 ‘정상’으로 되돌리려 모략하는 시도도 같은 맥락이다.
카라스코는 거울의 기사로 변신한다. 알론조는 이 거울의 기사를 통해 현실과 마주하고 좌절한다. 이어 기억상실증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와 앓아눕는다. 소설은 이렇게 돈키호테가 죽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뮤지컬은 이를 희망적으로 재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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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의 즉흥 연기로 부활한 알론조는 알돈자의 진심어린 호소에 돈키호테였던 자기를 기억해낸다. 그리고 또 잘못 돌아가는 세상과 맞서 싸우리라 다짐한다. 그의 의지는 재판정으로 향하는 세르반테스가 이어받는다. 그리고 마침내 캄캄한 감옥으로 한 줄기 빛이 비친다.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넘버 ‘이룰 수 없는 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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