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기본소득 도입의 전제조건
정치권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이 재점화됐다. 지난해 6월 초 21대 국회가 시작되면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라고 언급한 직후 여야를 막론하고 유력 정치인들이 앞다퉈 한마디씩 했다.
기본소득을 자신의 대표 브랜드로 내세우고 싶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가장 적극적이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은 코로나19 이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피할 수 없는 정책인데, 복지정책이라는 착각 속에서 재원 부족, 세부담 증가(증세), 기존 복지 폐지, 노동의욕 저하, 국민반발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궁극적 문제가 공급혁명이 아니라 소비와 분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본소득 도입을 논의할 필요는 있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력을 대체하게 되면 실직자들은 소득이 줄게 된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많아지면 초생산성 달성을 통해 획기적으로 늘어난 공급물량을 소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경기침체가 가속화될 수 있다. 이런 구조적 불황을 데이터세, 탄소세, 로봇세, 국토보유세, 기본소득 목적세를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제공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실효성을 갖기 위해선 몇 가지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첫째,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실제로 일자리 총량이 줄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3차례의 산업혁명을 통해 일자리가 줄어든 전례가 없다. 1차 산업혁명 당시 영국에서 기계파괴운동이 일어날 정도로 기계에 의한 일자리 감소 우려가 있었지만, 그 이후 훨씬 많은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다. 2, 3차 산업혁명도 마찬가지였다. 유튜버가 장래희망이 되는 세상이니,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다. 일자리 감소에 대한 지나친 비관론에 빠지는 것보다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
둘째,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의 핵심목적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소득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가계소득과 소비수요 감소에 따른 구조적 저성장과 경기침체를 방지하고 자본주의체제 유지와 시장경제의 지속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사전적 의미는 재산이나 소득, 고용 여부, 노동 의지 등과 무관하게 정부 재정으로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최소 생활비를 ‘주기적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사전적 의미, 특히 ‘모두에게 공평’에 매몰될 경우 기본소득은 정치적 슬로건화될 위험성이 매우 크다.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셋째, 기본소득 재원 마련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매월 30만원을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금할 경우 180조원이 필요하다. 새로운 세제를 도입하더라도 현재의 사회보장제도의 전면적 개혁 없이는 마련하기 어려운 액수이다. 기존 사회보장제도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1000만명이 넘는다. 기본소득의 도입 취지와는 달리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가능성도 매우 크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오히려 일자리를 줄게 만들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 오히려 비정규직이 늘어난 사례를 잊어선 안된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이 마치 기본소득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제대로 된 정책이 수립되기 어렵다. 실효성이 나타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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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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