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주된 역할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오랫동안 대내외적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로 여겨졌다. 현재와 같이 광범위한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국가가 개인적 자유를 일정 정도로 통제할 수 있는 근거도 국가의 존재 이유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안전은 물리적 폭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했다. 하지만 인간안보(human security)라는 개념이 보여주는 것처럼 안전의 의미는 계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나타난 것처럼 보건도 인간안보의 중요한 영역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경제적 안정성도 인간안보의 핵심적 영역이다.
시장경제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해내는 데 매우 효율적 체제이기는 하지만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라 경제적 불안정성을 계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체제이기도 하다. 경제적 불안정성은 시장경제에 내재한 특성이기 때문에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시장경제가 야기하는 경제적 불안정성을 상쇄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서유럽에서 발전한 복지국가는 시장경제에 내재된 경제적 불안정성을 상쇄하기 위한 정치적 요구의 결과물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경우에는 시장경제의 효율성에 기초한 경제 성장에 초점을 두고 발전해왔기 때문에 적절한 규모의 복지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다. 경제 규모에 비해 과소한 규모의 복지국가는 한국정치경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코로나19는 보건안보에 대한 위협일 뿐만 아니라 경제안보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인한 국제적·경제적 교류의 축소와 사회적 통제로 많은 분야에서 상당한 규모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향후 경제적 피해의 규모가 얼마나 확대될지 현재 시점에서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이미 많은 국민의 경제적 안정성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복지국가가 과소하게 발전된 한국사회에서 코로나19와 같은 예상치 못한 대외적 충격이 발생해 경제적 불안정성이 급증하게 되면 지금 당장 경제안보에 위협을 받고 있지 않은 국민도 미래의 경제적 안정성에 대한 심각한 불안감을 갖게 된다. 현재 이와 같은 불안감은 부채를 영혼까지 끌어모아 이뤄진 부동산과 주식에 대한 투자로 나타나고 있다.
실물경제는 침체하고 있지만 자신시장은 확대되고 있는 지금의 현상은 단순히 유동성 증가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적 안정성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많은 국민을 자산시장의 위험한 투자자로 만들고 있다. 소위 ‘영끌’과 ‘빚투’로 인한 가계부채는 엄청나게 급증하고 있다. 부채를 통한 자산시장의 성장은 거품 붕괴라는 또 다른 경제적 재난을 야기할 위험성도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국민의 경제적 안정성을 지키는 것도 국가의 주된 의무다. 물론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논쟁이 보여주는 것처럼 경제적 안정성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 역할의 범위와 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단기간 내에 도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향후 경제적 불안정성을 어떻게 상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가의 존재 이유와 결부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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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환 울산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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