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라임라이트]강동원이 안내하는 아비규환의 생지옥

최종수정 2020.07.16 13:39 기사입력 2020.07.16 13:39

댓글쓰기

영화 '반도' 강동원, 아비규환 반도 다시 찾는 정석役
연기자 간 액션 합맞추기 어려워…내면 신 적어 표정 변화에 신경
맡은 배역 분량·비중보다 작품성 우선 "영화계 부활 알리는 신호탄 되길"

배우 강동원

배우 강동원



영화 '반도'에서 한국은 삽시간에 아비규환이 된다. 한 바이오 공장에서 발생한 좀비 바이러스가 순식간 전역으로 퍼져서다. 힘겹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난민을 자처한다. 미군의 도움 덕에 여객선을 타고 홍콩으로 향한다.


망망대해도 안전하지 않다. 지하 객실 구석에 웅크려 있던 한 남성이 좀비로 변한다.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물어대 여객선은 피바다가 된다. 군인인 정석(강동원)은 백발백중의 총 솜씨로 난리를 해결한다. 그러나 가족을 잃는다. 멀리서 육지가 보이지만 넋을 놓고 앉아 있다. 희망과 이성을 모두 잃어버린 얼굴이다.

정석은 야만성에 지배당한 세상을 보여준다. 그래서 4년 뒤 외형과 성격 모두 변해버린다.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와 누더기가 다 된 티셔츠.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려 있다. 한국을 탈출하지 못하고 숨어지내는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다.


강동원은 "어떤 카타르시스도 기대할 수 없는 배역"이라고 소개했다. "다양한 사람과 만나며 변하는 감정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고자 했어요. 내면이 성장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관객을 지옥 같은 세상으로 잘 인도하고 싶었죠."


영화 '반도' 스틸 컷

영화 '반도' 스틸 컷



길잡이에 가까운 배역은 입체성이 부족하다. 카메라의 초점이 그가 바라보는 사람들과 세상에 맞춰지기 때문이다. 정석은 돈 가방이 든 트럭을 가져오기 위해 매형인 철민(김도윤)과 함께 한국으로 향한다. 그 뒤 기대할 수 있는 이야기는 하나뿐이다. 절체절명의 궁지에서 탈출할 수 있느냐다.

연상호 감독은 극 중반 정석과 민정(이정현)의 재회에서 비롯된 갈등을 금세 봉합한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랜드 오브 데드(2005)'처럼 살아남은 인간들 사이의 균열에 천착하지도 않는다. 그래서일까. 강동원은 '반도'를 액션영화로 규정했다.


"사실 좀비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놀라게 하는 장면은 많지만, 심리적 압박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검은 사제들(2015)' 같은 오컬트 영화를 더 선호했죠. 그런데 막상 촬영해보니 그 매력이 무엇인지 알겠더라고요.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현실이 가까이 맞닿은 배경이요.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정석을 그려나갔죠."


영화 '반도' 스틸 컷

영화 '반도' 스틸 컷



-'형사(2005)', '전우치(2009)', '초능력자(2010)', '군도: 민란의 시대(2014)', '인랑(2018)' 등에서 다양한 액션을 연마해 비교적 수월하게 연기했을 듯한데….

"막상 촬영해보니까 그렇지 않더라고요. 좀비 연기자들과 합을 맞추기가 까다로웠어요. 좀비는 수비할 줄 모르잖아요. 계속 달려들기만 하니까 사전에 준비한 구상이 자주 뒤엉켰죠. 그들 입에서 떨어지는 침을 맞기도 곤혹스러웠고(웃음). 무술팀 배우들이 좀비를 실감 나게 연기했어요. '부산행(2016)'을 시작으로 국내에 좀비 소재 작품이 많이 나왔잖아요. 경험이 축적된 까닭인지 하나같이 능숙한 공격을 보여줬죠. 연상호 감독님이 '컷'이라고 외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부끄러워했고."


-'반도'는 '부산행'과 달리 액션 컷이 길고 핸드헬드(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촬영하는 기법)가 많던데….

"몇몇 장면은 1분 이상 촬영했어요. 연기 때는 어려웠지만 (흐름이 끊기지 않아) 분노 등의 감정이 더 잘 표현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석에 대한 조명이 깊지 않다 보니 이 부분에 상당한 공을 기울였을 것 같은데….

"맞아요. 극을 주도하는 인물이지만 내면을 보여주는 신이 많지 않죠. 하이스트 영화의 성격도 있어서 자칫 평면적으로 그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어요. 그래서 액션에 감정을 담는 방법과 관련해 많이 고민했죠. 특히 민정의 가족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심경 변화요. 조금만 얼굴을 달리해도 과하게 나타날 수 있어서 스스로 타협점을 찾아야 했죠."


영화 '반도' 스틸 컷

영화 '반도' 스틸 컷



-극 중반부터 정석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기도 하던데….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부터 배역의 비중은 논외였어요. '반도'의 주제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아이들이잖아요. 희망과 이성을 잃은 어른이 더 돋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부정적으로 보면 정석은 준이(이레)와 유진(이예원)를 뒷받침하는 배역에 불과해요. 그래서 연상호 감독님은 제가 섭외 제안을 거절할 거라고 예상했나 봐요. 촬영을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 연신 고마움을 표하시더라고요. '정말 출연해주실 줄 몰랐다'면서(웃음)."


-자기 분량을 챙기기 바쁜 배우들이 많은 게 현실인데 그런 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나요.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나이 먹으면서 책임감이 커지니까 자연스레 변한 것 같아요. 맡은 배역의 분량이나 비중보다 작품의 완성도를 더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연기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크게 줄었어요. 제작진과 즐겁게 촬영하며 끈끈한 동지애를 느끼고 있죠."


영화 '반도' 스틸 컷

영화 '반도' 스틸 컷



-지난 2월 대기업의 영화 배급업과 상영업 겸업 제한 등을 골자로 한 '포스트 봉준호법' 법제화에 서명한 것도 그런 동지애에서 비롯된 것인가요.

"이창동 감독님의 제안으로 참여했어요. 중소기업이 살아야 대기업도 살 수 있어요. 영화계는 더욱 그래요. 공생이 선행돼야 다양한 색깔의 영화가 나올 수 있죠. 20대에는 제도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어요. 동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조금씩 눈 뜨기 시작했죠. 아무래도 배우이다 보니 주위에서 이런 행보를 만류하기도 해요. 하지만 제가 일하는 영화계의 문제잖아요.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영화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반도'의 개봉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코로나19 사태 이후 월드와이드로 개봉하는 첫 번째 작품이잖아요. 영화계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으면 좋겠어요. 나아가 코로나19에 지친 관객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고요.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카체이싱 액션이 많이 나와요. 모처럼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실 수 있을 거예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