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반지하/이관묵
갓 여남은 살이나 되었을까 사내아이가 반지하 단간방 찬 바닥에 새우처럼 구부리고 잠을 잔다. 며칠 전 병원으로 실려 간 할머니의 잠을 둘둘 말아 개 놓고 오늘은 할머니가 입던 시간도 깨끗이 빨아 널었다. 연탄아궁이 앞 엎어진 운동화 한 짝은 모든 길이 공중에 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지상의 물음에 지하의 묵묵부답이 깊어지는 세계. 절반은 낮이고 나머지 절반은 늘 끌고 다닌다. 오늘도 그 절반을 데리고 멀리 방파제 가서 한참을 앉았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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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지하에 산다는 건 땅 위가 반의 반의 반쯤 보인다는 거고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하늘이 보이지 않으니까 새도 보이지 않고 나무 꼭대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반지하에 산다는 건 비가 오면 창문에 흙탕물이 튄다는 거고 눈이 오면 눈 아래 묻힌다는 거다. 그리고 봄이면 주인아줌마가 창문 앞에 일렬로 심어 놓은 화초들이 하나둘 꽃을 피우는 봄이면 꽃 냄새가 아니라 거름 냄새를 맡아야 한다는 거다. 그런 거다. 반지하에 산다는 건 누군가의 툭툭 끊기는 오줌 냄새를 맡아야 하고 누군가의 질긴 욕설과 부질없는 혼잣말을 들어야 한다는 거다. 죽은 듯이 말이다. 반쯤은 아니 반하고도 또 반하고도 반쯤 땅속에 산다는 건 순장도 아니고 생매장도 아니고 그냥 이 세상에 처음부터 없는 사람으로 그렇게 죽어서 산다는 거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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