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리 시게타카 후지필름홀딩스 회장 저서 '후지필름, 혼의 경영'

[Economia]기술 응용해 사업 확장, 후지필름은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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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사진 필름 시장은 과점이었다. 기업 네 곳이 지배했다. 일본의 후지필름과 코니카, 미국의 이스트만 코닥, 유럽의 아그파 게바트. 제각각 고도의 기술을 보유해 순조롭게 이익을 유지했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이제는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쉽게 사진을 찍는다. 고성능 디지털카메라로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도 뽐낸다. 사진 필름의 수요는 급격히 감소했다. 매년 20~30%씩 축소되며 붕괴 조짐을 보였다. 후지필름의 경우 매출의 60%, 이익의 2/3를 차지하던 시장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회사의 존폐를 위협받는 난국을 맞았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고모리 시게타카 사장은 2006년 1월 구조 조정을 수반한 개혁안을 예고했다. 코니카 미놀타가 카메라 필름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한 터라 사람들은 후지필름 또한 사업을 포기할 거라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고모리 사장은 사진 필름 사업을 존속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은염 사진을 중심으로 한 사진 사업을 계속하고 사진 문화의 무궁한 발전을 지향한다." 현지 언론들은 일제히 우려를 나타냈다. 투자자들도 힘들고 무거운 짐이 될 거라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고모리 현 후지필름홀딩스 회장은 저서 '후지필름, 혼의 경영'에서 당시 상황을 "자동차가 사라진 시장에 남은 도요타"라고 비유했다. 누구보다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하고서 사진 필름 사업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사진은 인간에게 매우 귀중한 문화"라고 했다. "사진은 기쁨이 넘치는 즐거운 추억, 빛나는 추억, 사랑하는 가족과 보낸 멋진 순간 등을 잘라내어 기록할 수 있는 미디어다. (중략) 이런 문화를 지키는 것이 후지필름의 사명이다. 돈벌이가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고모리 사장은 디지털화에 대응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이전의 사진 필름 사업과 같은 이익을 확보할 수 없다고 봤다. 그래서 이에 걸맞은 핵심 사업을 창출하는데 매진했다. 기술 재고 조사를 진행했고, 이를 하나씩 사회의 요구와 대조했다. 회사가 보유한 기술력을 시장 확대가 예상되는 분야에서 응용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는 여섯 가지 사업에 도전했다. 이미 충분한 기술력을 갖춘 디지털 이미징과 광학 디바이스, 고기능 재료와 기술은 부족하지만 큰 수요가 예상되는 그래픽 시스템과 디지털 인쇄, 메디컬 라이프 사이언스다.

메디컬 라이프 사이언스의 경우 화장품 제조에 주력했다. 필름과 화장품은 언뜻 보기에 다른 분야로 보일 수 있지만, 공통점이 많다. 사진 필름의 주된 원료는 젤라틴 즉 콜라겐이다. 인간의 피부에서 70%를 차지하는데, 피부의 윤기와 생기를 보호한다. 후지필름은 사진 필름 기술개발을 통해 콜라겐을 80년 가까이 연구한 실적이 있었다. 신체 노화를 일으키는 산화도 사진의 빛바램 현상과 관련이 깊다. 인간의 피부가 노화하는 것은 산화 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사진의 빛바램 현상이 나타나는 원리와 같다. 후지필름은 시간이 지나면 사진이 어떻게 변하고 어떤 물질을 첨가해야 열화가 방지되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있었다.


후지필름은 2012년에 매출액 22조원을 달성했다. 주력 사업의 붕괴라는 위기를 넘어 새로운 성장 노선을 탔다. 한때 후지필름 매출의 수십 배를 자랑하던 코닥은 그 무렵 미국 연방파산법 11조에 근거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고모리 회장은 명암이 뚜렷하게 갈린 이유에 대해 "오랜 세월에 걸쳐 사진 필름 세계의 선도 기업으로 군림해 온 것이 족쇄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주력 사업을 지나치게 소중히 생각해 사업 다각화에 대한 의욕이 후지필름보다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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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리 회장에게는 비즈니스도 사는 것도 모두 싸움이다. 늘 지지 않기 위해 힘을 키우고, 어떻게 싸울지 고민한다. 그것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내가 말하는 '이기다'라는 말은 '이겨내다', '극복해내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그냥 '이기는 것'이 아닌 '현명하고 바르며 강하게 이기는 것', '이겨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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