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나가라는 거지…" IMF 시절부터 이어져 온 악습 '사내실업'
직장갑질 10건 중 1건은 '자진퇴사 종용'…상황적 사내실업·인적 사내실업
오는 7월부터 퇴사 종용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역부족' 전망
[아시아경제 유병돈 기자] # 국내 굴지의 기업인 S사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한 정모(54)씨는 최근 몇 개월 동안 아무런 업무를 배정받지 못한 채 출퇴근을 반복했다. 정씨가 부서 업무에서 사실상 배제된 것은 공교롭게도 상사와 말다툼을 벌인 직후부터였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 사무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늘자 결국 정씨는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 D 건설사에 재직 중인 직원 1600여명은 향후 3년간 승진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또 서울에서 지방으로 사옥을 이전하는 계획도 고지됐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은 사옥 임대료가 너무 높다는 표면적인 이유에서였으나, 지방 이전에 부담을 느낀 직원 200여명이 퇴사하자 이 얘기는 쏙 들어갔다. 이 때문에 사실상 인력 감축을 위한 회사의 꼼수였다는 불만이 직원들 사이에서 속속 제기됐다.
국내 산업계에 종사하는 중년층들 사이에 ‘사내실업’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출근은 하지만 아무런 업무를 배정받지 못하고 회사 내에서 겉도는, 사실상 퇴직을 종용받지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곳곳에서 고통받고 있다.
사내실업이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해고되고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피고용주’, 즉 법률상의 제약에 의해 해고는 피했으나 공적으로 유예된 상태에서 그 규제나 지원이 사라진 이들을 지칭한다. 일본 내 한 매체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사내실업상태’인 직원을 안고 있는 일본 기업은 전체의 6%였고, ‘그런 직원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17%에 달했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과거 IMF 외환위기 시절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던 기업들이 일부 직원들의 책상을 화장실 앞으로 이동시키거나 하는 구차한 방법으로 퇴사를 종용하고는 했던 문화가 일반화돼버렸다. 실제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갑질 피해 제보 6500여건 가운데 회사를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자진 퇴사’를 종용받는 사례가 580여건으로 9%를 차지했다.
이 같은 사내실업은 조직의 상태에 따른 상황적 사내실업과 직원의 인간관계 및 업무능력에 따른 인적 사내실업으로 구분된다. IMF 시절 부도 위기에 몰렸던 국내 기업들이나 최근 D 건설사의 경우가 상황적 사내실업이라고 한다면, 상사와의 마찰로 퇴사를 결심하게 된 정씨의 사례는 후자로 볼 수 있다.
오는 7월부터 이처럼 퇴사 종용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이지만, 이미 하나의 문화처럼 뿌린 내린 사내실업을 원천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퇴사를 강요하는 모든 행위를 불법으로 간주하면서도 형사처벌 조항 등 강제성은 갖고 있지 않아서다. 특히 직원이 적은 중소기업의 경우 회사의 갑질을 고발했다가 되려 역풍을 맞는 경우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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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 관계자는 “법이 시행되면 사직 강요 등 직원에게 불리한 처분을 할 경우 과태료 500만원이 부과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추가적인 처벌 규정이 없다는 것이 맹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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