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서양의 전통적인 도심들을 방문했을 때, 곧바로 느낄 수 있는 시각의 차이는 건물들이 보여주는 스카이라인(sky line)이 우리네 전통 가옥들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대궐이나 사찰을 제외하면 2층 이상 건물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전통 가옥에 비해 서구 도심의 건물들은 높은 첨탑들을 지니고 있다. 교회 뿐만 아니라 도심지의 시계탑, 성곽의 감시탑(watch tower), 시청이나 교회의 종탑 등 온통 탑들 천지다.
그런데 이 첨탑들은 총기가 개발되고 전장에서 개인화기로 정착한 16세기 이후부터는 방어용도로만 쓰인 것이 아니라 총알 제조에 이용되기도 했다. 총알 제조에 쓰인 탑은 영어로 '샷 타워(Shot tower)'라 불리며 완전히 샷 타워로만 쓰인 탑들은 여전히 유럽은 물론 미국과 호주 등지에도 많이 남아있다.
19세기 중엽까지 총탄을 만드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당시까지 총기는 오늘날과 달리 흑색화약을 이용하는 화승총과 여기서 좀더 발전한 부싯돌로 점화하는 플린트락 머스킷이 전부였다. 소형 구형의 총알을 총구에 직접 넣어 쏘는 전장식 발사에서는 총알이 발포시 걸리지 않게 매끄러운 구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총기가 개인 화기로 쓰이면서 사용량이 많아진 납 탄환 모습. 둥근 구형의 모습을 갖춰야 총신 내부에 걸리지 않고 잘 발사됐기에 최대한 둥글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다.(사진=위키피디아)
원본보기 아이콘문제는 이 매끄러운 구형의 탄환을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데 있다. 기존의 대형 대포알의 경우엔 가격이 싼 돌을 깎아 만든 석포환을 쓰기도 했지만 표면이 거칠어서 포신이 좁은 총기에서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표면도 매끄럽고 그나마 가공이 쉬운 납을 사용했지만 납도 최대한 구형으로 만드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걸렸다.
이때 기술자들이 주목한 것은 빗방울이었다. 하늘에서 자유낙하해 떨어진 물방울은 구형을 유지한다는데 착안한 기술자들은 높은 첨탑 위에서 납을 녹여 방울로 떨어뜨렸고, 탑 아래에 미리 준비한 큰 수조에 이 방울을 떨어뜨렸다. 이걸 살짝 가공하면 구형에 가까운 총알을 빠른 속도로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각 도시의 총기제조소들은 탑을 세우기 시작했고, 이 탑들을 탄환제조탑, 샷타워라고 부르게 됐다.
기존에 교회 첨탑 등으로 쓰이던 탑이 샷타워로 개조된 경우도 있었다. 프랑스 파리의 샤틀레 역 근처에 위치한 '생 자크 탑(Saint Jacques Tower)'은 원래 생 자크 교회의 부속 첨탑이었으나 1797년 대혁명의 여파로 교회가 없어지고 난 뒤에 탄환제조탑으로 쓰였다. 오늘날엔 쇼핑센터가 된 호주 멜버른 센트럴 내부에 있는 탑 역시 'Coops Shot Tower'라 불리며 원래 탄환제조탑이었다. 이외에도 독일 베를린, 영국, 미국 각 주에 탄환제조탑들이 남아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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