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짬뽕 삼국지

짬뽕(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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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추석 연휴도 이제 막바지. 그동안 기름진 명절 음식 실컷 먹었다면 얼큰하고 따뜻한 국물 음식이 그리울 때다. 김치찌개라도 끓일까 부엌 앞을 서성이기도 하지만 엄두는 나지 않고 라면 봉지 뜯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을 때 우리 손은 자연스레 중국집 전단지를 향한다. 그래, 우리에겐 짬뽕이 있었다. 그 벌건 국물에 감긴 흰 밀가루면 후루룩 빨아들이다 보면 땀을 한 바가지 흘리겠지. 그러면 연휴 내내 가시지 않던 느끼함은 잦아들고 허기는 사라질 거야. 그렇게 짬뽕은 긴 연휴 막바지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없어서는 안 되는 짬뽕은 어디서 왔을까. 짬뽕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중국음식의 이름이면서 서로 다른 것을 뒤섞는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짬뽕의 정체성이다. 한 그릇의 짬뽕에는 중국과 일본, 한국의 음식 문화가 짬뽕돼 있는 것이다.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의 책 '차폰 잔폰 짬뽕'은 중국에서 먹던 음식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와 짬뽕이 됐다고 설명한다. 차폰과 잔폰은 각각 중국과 일본에서 짬뽕을 부르던 말이었다. 일본 나가사키에 정착한 중국화교들이 차폰을 현지화한 잔폰을 먹었고 이것이 한국식으로 변형돼 짬뽕이 됐다는 것이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한·중·일이 동일한 경제 권역으로 묶이면서 생긴 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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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조선이 일제에 강제로 병합된 이후, 조선에 살던 화교들은 일본 본국에 살고 있던 화교들과 같은 정치경제적 영역에 포섭됐다. 더욱이 일제가 조선을 교두보로 중국을 침략할 준비를 하는 동안, 조차지였던 상하이는 나가사키를 통해서 일본과 연결돼 있었다. 이렇게 조선의 화교와 일본의 화교는 1945년까지 일제라는 동일한 정치경제적 영향권에 놓여 있었다. (중략)심지어 한국식 자장면이 나가사키의 중국식당에서 판매된다. 자장면은 분명히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화교들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이들이 나가사키의 화교들과 연결되면서 한국식 자장면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 대신에 잔폰이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썼다. 잔폰은 나가사키 짬뽕인데 우리가 먹는 짬뽕과는 다르다. 중국에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각 나라의 문화가 스며들어 맛과 재료가 조금씩 달라진 것이다.

요리사 박찬일은 그의 책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에 이 짬뽕 스토리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가사키 짬뽕은 여러 설이 있는데, 나가사키가 개항이 되고 외국인들이 들끓던 시절에 시작됐다는 게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중국 푸첸성 출신의 진평순이 중국 유학생들을 위해 처음 고안해서 만들어 팔았다는 얘기가 있다. 그 후 한국에는 일제시대에 건너와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 양념의 빨간 짬뽕으로 바뀌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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