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대사는 없죠
 등이나 스쳐 가는 옆모습으로 말해야 하죠

 수많은 배경 중 하나
 있어도 없어도 그만
 자막 맨 끝에 가까스로 매달리거나
 아예 지워지는 이름


 그런데 왜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게
 가을 저녁의 횡단보도를 건너 집으로 가는 게
 그토록 힘들었을까요

 왜 그리 자주 NG를 내고
 눈물을 감추고
 마른 입술을 깨물어야 했을까요


 잠깐 누군가의 어미 아비가 되는 일
 살구나무에 맺힌 살구 알을 만지는 일
 가슴의 생각을 묻고 듣는 일


 때론 침대에 누워 잠드는 일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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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누군가는 위대한 예술 작품을 창조하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 저 먼 타국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씻고 밥 먹고 출근하고 일하고 그러다 퇴근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잠든다. 그러면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늙는다. 무수한 실수를 때로는 알고도 잘못을 범하면서 그래서 나날이 초라해지고 비굴해지는 자신을 끌어안고서 말이다. "때론 침대에 누워 잠드는 일마저도" 힘들 만큼. 다시 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다가 사라진다. 물론 대부분이 그러하다고 해서 범속하고 비루한 삶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저 무수한 행인들이 걸어간 길이 인간의 길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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