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강보에 싸여 있었고
 그날 나는 꿈결 같은 구름 위에 살포시 얹혀 있었다
 뭉쳐졌다가 흩어지는
 구름의 행렬들


 오래된 교회의 마룻바닥에서 나무 냄새가 휙 하고 지나갈 때, 문득
 난생처음인 세계가 덜컥 빗장을 열었을 때

 그날 나는 강보에 싸여 있었고
 그날 나는 잔잔한 물결 위에 누워 있었는데
 일사분란하게 저녁이 오고 있었다
 이상한 건


[오후 한 詩]지속적인 공중/송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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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나는 다만 강보에 싸여 있었고 꿈결같이 나른한
 종소리 위에 누워 있었을 뿐인데


 나는 지속적으로 뿌리가 질긴 나무가 되어 갔다


 나는 지속적으로 커다란 공중이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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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낌새'에 해당하는 '기미'는 한자어로 '幾微' 혹은 '機微'라고 적는데, '어떤 일을 알아차릴 수 있는 눈치, 또는 일이 되어 가는 야릇한 분위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단어의 두 한자 표기들 가운데 앞의 것의 한자어들의 의미를 가만히 살펴보면 무척 흥미롭다. '기(幾)'는 '조짐'이라는 뜻도 있지만 '위태롭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고, '미(微)'는 '작다, 자질구레하다, 숨다, 숨기다'라는 맥락으로 쓰인다. 그래서 이렇게 적어 볼 수도 있다. '기미'는 극히 작지만 뭔가 위태로운 것이 숨어 있는 잘 드러나지 않는 징조라고 말이다. "오래된 교회의 마룻바닥에서 나무 냄새가 휙 하고 지나갈 때, 문득"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그처럼 말로 표현하기 참 어려운 묘하고 이상한 찰나들로 인해 우리의 생은 "뿌리가 질긴 나무" 혹은 "지속적으로 커다란 공중"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이 시의 핵심어를 "문득"이라고 생각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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