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사진=현대문학)

무라카미 하루키(사진=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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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는 쓸데없는 수식어만큼이나 '실험'을 경계했다. 그는 에세이 '글쓰기에 대해'에 이렇게 적었다. "'실험'은 부주의함과 멍청함 또는 모방의 허가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너무나도 잦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게 더욱 고약한 이유는, 작가가 독자를 학대하고 소외시키는 허가증으로 이걸 이용한다는 것이다."

카버를 사랑해서 모조리 번역하고 그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버와 전혀 다르게 소설을 썼다. 동굴을 파고 공중에 집을 지어 '쥐' '양' '고양이'같은 비틀린 소재를 수수께끼처럼 숨겨놓더니 달이 두 개 뜨는 이야기(1Q84)로 내달았다. 사이토 미나코가 '문단 아이돌론'에서 "하위문화의 최전선, 즉 컴퓨터 게임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고 하루키를 비평한 데는 일리가 있다.


여행기 '먼 북소리'에서 밝힌 다짐만 보면 하루키가 감행한 '실험'은 어색하다. "자기 눈으로 본 것을 자기 눈으로 본 것처럼 쓸 것." 고루한 말로 '거장들을 발판삼아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카버가 생전에 인상 깊은 말을 적은 '3X5 카드'에, 가뜩이나 수식어가 많기까지 한 하루키의 문장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을 것 같다.

이런 하루키의 소설에 '생활'이 스미기는 어렵다. 개개의 묘사는 정직할지 모르지만 문학이 추구하는 정직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더러는 지적한다. 어쩌면 당연하다. 그는 일본항공이 일등석용으로 발간하는 '아고라' 같은 잡지에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런 글을 모아서 낸 책 중 하나가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다.


지난 5월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한 문학평론가와 소설가는 "골 빈 대학생들이 하루키를 너무 좋아한다"거나 "하루키의 소설은 문학이라기보다는 소비향락 문화의 아이콘"이라는 말로 하루키를 깎아내렸다고 한다. 표현이 조금 지나쳤지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결국, 공허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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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 1만5000명 중에서 고료와 인세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 1%도 안 된다는 곳이 우리나라 문단이다. 2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는 선인세를 가져다 바치면서까지 그를 들여오려는 출판사를, 출판사들의 유혈경쟁을 어찌 비난만 하겠는가. 그렇게 인공호흡이라도 해서 돈을 돌려야 무슨무슨 작가상, 신인상 같은 것도 돌아간다.


이렇든 저렇든 하루키는 쓴다. "(문학상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고 지금도 똑같은 만큼" 없다(직업으로서의 소설가)면서, 그저 '쿨하게' 쓴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서 읽는다. 이틀 뒤(12일)면 하루키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가 우리나라에 나온다. 서점들은 '하루키 특별매대'를 준비한다. 하루키 뺨치는 우리 젊은 작가들의 소설집이나 수상작품집은 그 뒤편 '한국소설' 서가에서 조용히 독자를 기다릴 것이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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