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창밖으로
눈은 눈을 덮고 있었다
첫눈이 온다고 하자
우린 첫눈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기억나지 않는 처음들을 세어 보는데
우린 누구의 전생을 살고 있는 걸까
공손을 배워야겠다
첫눈은 첫눈이라고 그는 다시 말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리가 언제 만났더라?
창밖으로 방금 지나쳐 간 사람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무섭게 사랑해야 할 것만 같았다
개나리가 핀 걸 처음 본 날, 아니 아니 개나리가 정말 노랗네, 그럼 병아리는 어디 있지, 그러면서 동무들과 담장 아래를 한참 맴돌던 날, 그 도란도란했던 봄날. 그 봄날은 전생만 같아 전생처럼 기억이 나질 않고. 낙숫물이 참 맑다고 생각했던 건 언제였더라. 그건 모르겠고, 정녕 모르겠는데, 낙숫물을 받아 울던 얼굴을 훔치던 스물두 살의 어느 여름 저녁은 생생하고. 그날 내 어깨를 두드려 주던 형의 뭉툭한 사투리 하나하나도 끝내 생생하고.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그래 꼭 만나자고 손가락 걸고 약속해 놓곤 첫눈처럼 잊어버린 사람, 그 사람. 그 사람은 다시 누군가의 첫사랑이 되었을까, 내게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첫'은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얼룩이라는 생각, 그런 생각이 들어 두 손을 가만히 맞잡아 보는 저녁이다. 채상우 시인
[아시아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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