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만든 기술이 자본주의를 죽였다
IT가 지금껏 만들어낸 인류가치 초기화
새로운 세상 만들어낼 토대가 될 것
브렉시트, 트럼프 당선이 변화의 시작
[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이 시대를 비극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대재앙은 이미 일어났고, 우리는 폐허 속에 살고 있다. (중략) 아무리 많은 하늘이 무너져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영국의 소설가 로렌스(D. H. Lawrence)가 1928년 자국의 귀족들을 묘사하며 남긴 글이다.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고, 귀족계급은 근사한 저택과 고풍스러운 예의범절의 세계로 숨어버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현대 엘리트의 모습과 흡사하다. 금융귀족들은 마치 지금까지의 위험징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연기하면서 부유한 삶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현 시대를 독점한 엘리트 귀족층은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자유시장과 규제완화, 개인재산권을 중시하는 체제에서 경쟁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는데 초점을 둔다. 이러하니 대중의 공공복지보다 소수의 부와 권력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20세기 후반의 기업가, 정치인, 에너지 재벌, 은행가들은 그들의 선조들처럼 프랑스 제2제국과 베트남의 몰락, 공산국가의 붕괴 등 구축된 질서가 철저히 무너지는 상황을 경험하지 못했다. 2000년에 이르러 신자유주의 질서를 만든 세대들은 이러한 혼란의 역사를 통제 가능한 것으로 본다. 금융위기는 통화 팽창을 통해 해결하고, 군사적 위협은 무인기 폭격으로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운동마저 힘을 잃어 정치에 변수로 작용하지 못하자 세상에 대처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여긴다.
외형이 조금 달라졌을 뿐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2017년도 마찬가지다. 2세기 남짓한 기간에 걸쳐 자본주의는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호황과 불황 사이를 널뛰듯 오가는 경제순환을 통해 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등으로 떠오르고 변화되며 강화됐다. 그러나 불황과 실업, 그로 인한 빈부격차 확대, 시장개방 압력으로 인한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갈등 문제 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저자 폴 메이슨(57)은 영국 BBC와 채널4에서 경제 에디터를 역임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진화가 끝났다고 역설한다. 그간 비슷한 패턴의 자본주의 업그레이드 버전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관점을 바꿔보자고 한다. 이번에야말로 자본주의 자체, 즉 사회의 토대인 그 어마어마하고도 복잡한 체계가 완전히 새로운 무엇으로 변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포스트 자본주의'라고 명명한다.
메이슨은 기술이 자본주의를 죽였다고 진단한다. 핵심 요인으로는 정보기술, 즉 IT(Information Technology)를 지목한다. IT는 자본주의에 의해 촉진됐으나 역설적으로 인류가 지금껏 만들어낸 가치를 0으로 초기화시킨다. 또 시장과 임금 그리고 사유재산권에 기초한 기존의 경제 질서를 무너뜨린다. 앞으로 성장에 얼마나 기여할지 알 수 없다.
그는 자본주의가 낳은 IT의 혁명적인 발전이 결국 자본주의의 해체를 불렀으며, 나아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내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의 대단원에서 완전히 다른 단계로 접어드는 세상을 전망하고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경제·사회적 변화를 능동적으로 포착해 변혁의 기회를 잡으라고 제안한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최근 일련의 국제 이슈는 99%가 만드는 포스트자본주의를 대변한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와 스코틀랜드의 독립 시도, 도널트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따른 미국의 보호무역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2000년 이후 세계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질서에 역행한다. 다자간 협력보다 자립성 강화를 추구한다.
메이슨은 대중의 힘을 믿는다. 그가 가리키는 대중은 끊임없는 체제에 대한 반성과 수정으로 긍정적 발전을 모색하며, 변화의 주체임을 인식하고 있다. 정보네트워크의 발달로 서로 연결되면서 인류역사상 가장 커다란 변화의 주체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좌파들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한다.
메이슨은 보통교육을 받은 보통사람들이 끝내 나머지 1%를 해방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로렌스의 말에서 찾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폴 메이슨 지음/ 안진이 옮김/더퀘스트/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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