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문득 내가 사라졌으면, 아니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혹은 지금이 아닌 어느 시간 속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는 욕구와는 결이 다르다. 그것은 또한 죽음충동과 같은 도착적이고 직접적인 욕망과도 좀 다른 듯하다. 단지 낭만적이라기엔 본질적이고, 진정으로 외설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조리 운운하기엔 어찌되었건 그에 이르는 인식적 절차가 생략되어 있다. 종교적 깨달음과도 무관하다. 돈오(頓悟) 곁에는 항상 점수(漸修)가 있게 마련이다. 또는 여행 중에 자신도 몰래 빠져든 엑조틱한 감상이라기엔 참으로 맥이 빠지고 말이다. 일상생활 중에 돌연 그럴 때가 있기도 하고. 그러니까 이유도 맥락도 모르겠는데 그럴 때가 있다는 거다. "내 인생에 선사하게 될 뜻밖의 구멍" 그런 게 "달콤한 꿈"처럼 내 앞에 당도할 때가. 그럴 땐 그저 "얼른 눈을 감"고 그 "구멍" 앞을 잠시 서성여 보는 것도 그래서 완벽히 텅 비어 버리는 순간을 마주하는 것도 꽤 근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잠시'여야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