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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정성/김영승

최종수정 2016.12.22 10:40 기사입력 2016.12.2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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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회용 면도기를 들고
 흰 런닝 셔츠 바람에

 사실은
 거울의 안과 밖엔
 정성 그 자체인 생명체가
 그 음향이 변하여
 精誠

 그렇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가로등 밑엔
 제비꽃
 그리고 其他

 
[오후 한詩] 정성/김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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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렵지 않은 시다. 그저 어떤 사람이 런닝 바람으로 거울 앞에 서서 면도를 하는 장면이 전부다. 만약 살짝 어렵게 느껴졌다면 아마도, 시인은 왜 하필 "정성"을 떠올렸고, 그게 또 어찌어찌 "울려 퍼"져서 "가로등 밑" "제비꽃"으로 향했고, 마지막에 왜 "그리고 其他"라고 적었을까 그 맥락이 좀 궁금해서였을 것이다. 나도 궁금했다. 그래서 '정성'이 무슨 뜻인지 새삼스럽게 한국어 사전을 펼쳐 봤다.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찾는 김에 '정(精)' 자의 뜻도 더듬거려 봤다. 그랬더니 '쓿은 쌀'이라는 뜻이 툭 튀어나왔고, '쓿다'를 찾아보니 '거친 쌀, 조, 수수 따위의 곡식을 찧어 속꺼풀을 벗기고 깨끗하게 하다'라고 써 있었다. 재미있었다. 재미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고 한번 든 생각들을 다시 하다 보니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해 괜스레 흐뭇했다. 내 생각들을 적어 보자면 이렇다. 한 남자가 면도를 하다가 문득 참 정성스럽게도 하고 있구나,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한다. "정성 그 자체인 생명체"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 세상에 정성이 깃들지 않은 게 어디 있으랴 싶다. 그래서 가로등 아래 핀 "제비꽃" 하나도 온 정성을 다한 결과라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그런데 왜 '정성'과 '기타'는 한자어로 적었을까. '정성'은 그 글자에 좀 더 주목했으면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어찌되었든 좀 찬찬히 들여다보았더니 '정성'이라는 단어가 '쌀알 하나하나를 깎고 다듬는 그런 정도의 간곡한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 않은가. 그리고 '기타'는 어쩌면 한글로 적었을 때보다는 비록 찰나일지라도 조금 더디게 읽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 듯싶다. "그리고", 그러고 나서 아주 짧게나마 호흡을 가다듬는 동안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정성스런 마음으로 마주할 순간을 마련하고선, 그래, '기타'! 이렇게 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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