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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그 사람들]⑥배설, 이순신의 '12척'을 남기고 떠난 도망의 신

최종수정 2016.11.14 14:40 기사입력 2016.11.1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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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에서 배설 장군역을 맡은 김원해(사진= 영화 '명량' 캡쳐)

영화 '명량'에서 배설 장군역을 맡은 김원해(사진= 영화 '명량' 캡쳐)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영화 '명량'은 세계 해전사에서 기적의 승전이라 알려진 명량대첩을 집중 조명한 영화면서 동시에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의 한 장수를 부각시킨 영화였다. 바로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치를 수 있는 밑천인 12척의 함선을 남겨준 장수, 배설(裵楔) 장군이다.

영화 명량에 나온 배 장군은 전형적인 소인배로 나오며 거북선에 불을 지르고 이순신 장군을 암살하려고 하는 등 완전히 악인으로 그려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배 장군은 명량해전을 앞두고 지병으로 도망을 쳤고 전쟁이 끝난 이후 고향인 경상도 선산에서 체포돼 사형을 당했지만 결코 이순신 장군을 암살하려하거나 조선군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악인은 아니었다. 이 때문에 배 장군의 후손들은 영화 개봉 이후 제작사를 상대로 사자명예훼손죄로 소송을 걸기도 했다.
실제 기록 속의 배 장군은 아주 용맹한 용장으로 기록돼있진 않지만 전장 전체를 보는 눈이 있는 장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583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9년 전 과거에 급제해 벼슬생활을 시작한 배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에는 경상우도방어사인 조경(趙儆)의 휘하에서 전투를 했으며 이후 조경이 왜군에 패하자 의병 등을 규합해 다시 공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합천군수, 부산첨사, 동래현령, 밀양부사, 선산부사 등을 거치며 각지에서 왜군과 교전을 벌였다.

그의 운명을 뒤바꾼 것은 칠천량 해전이었다. 1597년,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받아 쫓겨난 후 원균 장군이 사령탑을 맡은 조선수군은 전군을 거느리고 칠천량으로 진군해 왜군과 일전을 벌였다. 이때 배 장군은 경상수사로서 함대를 이끌고 참전했다. 그러나 왜군의 대선단이 원 장군의 주력부대를 공격해 전세가 아주 불리하게 되자 나가 싸우지 않고 관망하다가 후방에 있던 자신의 함대 12척을 이끌고 남해 쪽으로 퇴각했다. 이후 적군에 이용될 수 있는 군사시설과 양곡, 군기 및 군용 자재 등을 불태우고 백성들을 피난시키는 등 패전 이후 수습에 나섰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벌일 수 있었던 것도 이때 배 장군의 빠른 퇴각 판단 덕분이었다. 배 장군은 이순신 장군이 복귀하자 숨겨두었던 함선 12척을 인계했다. 명량대첩까지 참전했다면 아마 그는 임진왜란의 영웅 중 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는 칠천량 해전이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배를 타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며 계속 겁을 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배설이 멀미를 핑계로 배를 타지 않거나 많이 두려워하며 배에 오르지 않았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그러다 배 장군은 명량대첩을 얼마 앞둔 9월 초, 탈영해서 고향인 선산으로 달아났다.

당시 통영에서 선산까지는 가는 길은 전부 왜군 점령지대로 어떻게 고향까지 도망쳤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몰래 도망친 것을 생각하면 단기필마로 적진을 헤치고 도망을 친 셈인데 왜군이 무서워 배에도 못 올라타던 장군이 어떻게 적진을 뚫고 고향까지 도망쳤는지 알 수 없다. 임진왜란을 통틀어 잦은 전투에서도 목숨을 건진 북병사 이일과 함께 도주능력이 아주 뛰어난 장수로 평가받는 이유다.

왜 도망쳤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선조실록에서는 병세가 위중했고 수질이 나서 배에 오르기 힘들었다고 나와있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간 뒤에 반란 모의 혐의를 받고 사형을 당해 단순 모함을 당한 것인지 무서워서 도망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 도망쳤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후 1599년, 도원수 권율이 내린 수배령에 의해 고향인 선산에서 발각된 배 장군은 체포돼 사형에 처해진다. 전시탈영과 반란 모의 혐의였다. 그러나 후대에 그가 쌓은 무공을 인정받아 원종1등공신(原從一等功臣), 병조판서로 추증됐다. 그 결말이 대단히 미스터리한 장수면서 명량대첩을 앞두고 조금만 더 용기를 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주는 장수로 남아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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