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임진년 그 사람들]⑤도요토미 히데요시, 짚신을 품던 '원숭이', 천하를 탐하다

최종수정 2016.12.21 14:30 기사입력 2016.11.06 08:15

댓글쓰기

'임진왜란1592'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의 김응수(사진=KBS '임진왜란1592' 제공)

'임진왜란1592'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의 김응수(사진=KBS '임진왜란1592' 제공)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지난 9월 KBS에서 방영됐던 사극인 '임진왜란 1592'에서 단연 돋보였던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할이었다. 역을 맡은 김응수의 연기도 대단했고 국내에서 히데요시가 일본 천하를 쥐는 과정을 사극에서 보여준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욱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실 국내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희대의 악당으로 터부시되곤 했다. 그와 관련된 게임이나 영상매체는 국내에서 정식발매가 어려웠고 그러다보니 일본 전국시대와 관련된 시대상도 대중에 잘 알려져있지 못한 상황이다.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막부가 붕괴된 이후인 메이지 시대부터 재조명된 인물로 알려져있다. 도쿠가와 막부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가까스로 통일된 정국에서 대전을 일으켜 백성들을 고생시킨 악당 정도로 치부됐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대륙침략에 나서게 되면서 대륙진출론의 선구자, 시대를 앞선 선각자로 인식이 180도 달라졌다.

또 한가지 그의 평가가 메이지 시대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일본천하를 장악한 군벌 중에서는 유일하게 쇼군(將軍)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무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조정에서 내린 벼슬인 관백(關白)직을 받았으며 명문귀족인 후지와라 가문의 양자로 들어갔다.

이어 조정으로부터 토요토미란 성도 하사받았으며 이후 조정 최고직인 태정대신(太政大臣)직함을 받았다. 이것은 외부에서 봤을 땐 조정을 상당히 우대하는 처사였으며 보통 조정을 무시하고 무가 정권을 수립하는 다른 쇼군들과 차별화된 모습이었다. 이로인해 존왕양이와 막부토벌을 주창하던 메이지 유신 세력들에게는 조정과 무가가 일체화된 공무합체(公武合體)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비춰졌다. 그래서 당시 더욱 띄워진 측면이 강하다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초상(사진=두산백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초상(사진=두산백과)


하지만 사실 정확히 표현하면 히데요시는 쇼군이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당시 쇼군은 초대 쇼군 가문을 일으킨 미나모토 요리토모(源賴朝) 이후 모두 일왕가의 후손이거나 적어도 방계는 돼야 올라갈 수 있는 귀족의 자리였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그 근본조차 명확치 않은 천민출신이라 정당성이 매우 부족했으며 결국 그가 기댈 수 있는 명분은 일왕을 포함해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해있던 일본 조정이 준 벼슬이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가장 큰 이유도 이 취약한 정권의 정당성 때문이었을 것이란 추측이 많다. 히데요시는 원래 일본 영주인 다이묘(大名)출신도 아닌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부리던 하인이었다.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전국을 대부분 통일했던 노부나가가 갑자기 암살당해 권력의 중핵이 사라졌을 때 재빨리 노부나가의 어린아들을 끼고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를 둘러싼 옛 노부나가의 가신들은 불만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본 전군의 절반 이상을 투입한 임진왜란이란 대 전쟁을 일으켜 다이묘들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고 그동안 본인은 일본에 있으면서 정권 기반을 다진 것이란 해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조선으로 출병한 출정군조차 믿을 수가 없어 조선출병 부대 대부분을 일본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젊은 장수들에게 맡겼고 이것이 나중에 중요한 패인으로 작용한다.

선봉에 선 1군, 2군 사령관을 모두 자신의 젊은 측근들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에게 맡기고 총대장은 자신의 양자인 스무살의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에게 맡겼다. 이외에 임진왜란 때 참전한 장수들은 젊은 장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전투에 능숙하고 정치력이 뛰어난 다이묘들이 조선에 가서 새로 왕국을 세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반영됐을 것이다.

정치적인 측면과 임진왜란과 관계된 역사들을 뺀 인간으로서의 히데요시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뛰어났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가장 잘 알려진 일화는 눈이 오는 겨울날, 노부나가의 신발을 가슴에 품고 있다가 가져온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일종의 설화로 사실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한다. 노부나가가 실제로 히데요시를 좋아했던 것은 물건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면 항상 준 돈보다 더 좋은 물건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히데요시는 항상 노부나가가 준 돈에 자기 돈을 더해서 좋은 물건을 사왔기 때문에 이를 알고 더 총애했다는 것.

현대 일본인들에게 히데요시는 일종의 성공신화다. 천민출신에 생김새는 원숭이 같고 왜소한 체격을 지닌 노부나가의 '원숭이'에서 동아시아 전체를 뒤흔든 정객으로 탈바꿈한 그의 인생은 아직도 임금과 귀족이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일본사회에서 아주 드문 케이스기 때문이다.

히데요시 자신도 당대에 스스로를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 일화에 따르면 히데요시가 일본 초대 쇼군인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목상을 보고 "당신은 일왕의 후손에 명문 가문의 출신이므로 유배지에서 거병했을 때에도 사람들이 따랐지만, 나는 천한 신분으로 일어나 내 능력만으로 천하를 잡았으니 당신보다 내가 낫다"라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