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정부가 최근 발표한 조선업 경쟁력 강화방안이 지금까지 '빅3(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조선소들이 추진해오던 자구안을 요약·정리한 수준에 그치면서 구조조정 방안을 준비해온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조조정의 핵심인 산업재편 없이 현 '빅3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면서 시급한 현안을 차기 정부에 '폭탄 돌리기' 하듯 떠넘겼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조선·해운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2018년까지 조선 3사의 도크(선박을 건조하는 작업장) 수를 현재 31개에서 24개로 23%가량 줄이고, 조선 3사의 직영 인력 규모도 6만2000명에서 4만2000명으로 32% 정도 감축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조선업계의 단기적 수주절벽에 대응하기 위해 공공선박 조기발주, 선박펀드 활용 등을 통해 2020년까지 250척 이상(11조원 규모)의 발주를 추진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특히 문제의 핵심인 조선산업의 공급과잉 대처 방안이나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방안에 관해서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원론적인 대책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10월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범정부 협의체가 설립된 이후 1년여를 허송세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윤석헌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는 "정부가 이날 발표한 대책은 조선 3사가 추진해오던 자구안을 요약·정리하는 수준에 그쳤다"며 "지금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치면 결국 조선산업의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는데도 정부가 자꾸 여론의 눈치만 보면서 시간만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민영화를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민영화 일정은 제시하지않아 차기 정부에 '폭탄'을 떠넘겼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채권단 관리 아래 있는 대우조선해양은 상선 등 경쟁력 있는 부문을 중심으로 효율화하고 중장기적으로 '주인 찾기'를 통해 책임 경영을 유도하겠다"고만 언급했다. 이번 방안에 조선 3사를 컨설팅한 맥킨지가 지난 8월 냈던 '빅2 체제로 재편'이라는 초안의 내용은 반영되지 않은 셈이다. 맥킨지는 독자생존 가능성이 가장 작은 대우조선해양의 매각 또는 분할안을 제시해 대우조선해양 측의 반발을 샀다. 업계가 10억원을 들여 의뢰한 맥킨지의 보고서 내용은 무용지물이었다. 총 36쪽에 달하는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자료 중 겨우 5줄 인용되는데 그쳤다. 결국 대우조선 구조조정 문제는 2001년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 졸업 이후 15년째 미해결 과제로 남게 된 셈이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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