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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나이트 사진전]편견을 깨는 순간 아름다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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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미술관에서 내년 3월26일까지

Red Coat I, Naomi Campbell for Yohji Yamamoto, 1987 (사진제공 : 대림미술관)

Red Coat I, Naomi Campbell for Yohji Yamamoto, 1987 (사진제공 : 대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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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1987년 이제 막 슈퍼모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17살의 나오미 캠벨이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가 평소 존경하던 크리스찬 디올을 생각하며 만든 강렬한 붉은 색 코트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텅스텐 조명 아래 나오미 캠벨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고, 사진작가 닉 나이트는 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역동하는 피사체를 향해 셔터를 눌러대는 순간, 옷의 디테일은 사라지고 새하얀 배경 가득 붉고 검은 실루엣만 남았다. 작가는 "여성의 몸을 보이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요지 야마모토의 말이 닉 나이트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해서 모델을 중시하던 당시 패션계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화보가 탄생했다. 닉 나이트(Nick Knight·58)는 이때를 "내가 본 패션 퍼포먼스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회상했고, 실제로 이 사진으로 그는 패션계에서 유명세를 치르게 됐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포토그래퍼로 손꼽히는 닉 나이트는 본인을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Image Maker)'으로 칭한다. 기존의 통념과 형식을 벗어나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그의 작품은 늘 화제를 몰고 다녔다. 알렉산더 맥퀸, 존 갈리아노, 이브 생 로랑, 톰 포드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러브콜을 보냈다. 비요크, 레이디 가가, 케이트 모스 등 유명 뮤지션과 아티스트들이 기꺼이 모델로 나섰다. 사진에 새로운 기술을 접목시키는 데도 앞장섰다. 상업성과 예술성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2010년에는 대영제국훈장(OBE)을, 2015년에는 브리티시 패션 어워드(British Fashion Award)를 수상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 누구도 다른 이들이 만든 잣대에 자신의 삶을 맞춰 살아서는 안된다", "나는 단지 세상을 좀 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뿐이다" 등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의외로 단순하다.

닉 나이트 (사진제공 : 대림미술관)

닉 나이트 (사진제공 : 대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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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대림미술관에서 개막한 '닉 나이트 사진전'의 부제는 '거침없이, 아름답게'이다. 국내에서 그의 작품과 작업과정이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영상·설치 등 110여점이 6개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다. "나는 아름다움을 정의 내리지 않는다. 다만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정형화된 '아름다움'의 개념을 뒤집는 일에 무척 관심이 있을 뿐"이라는 그의 말대로 각각의 작품은 '아름다움'의 외연을 넓히는 데 거침없다. 1980년대 남성성의 상징이었던 담배를 입에 물고 구부정하게 앉아있는 여자 모델의 사진이나, 신체장애가 있는 이들을 클로즈업해서 찍은 사진들이 대표적이다. 패션 화보에서 금기시됐던 폭력, 전쟁, 차별, 죽음 등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도 있다.
전시회 개막에 앞서 지난 5일 한국을 찾은 닉 나이트는 "내 작품들은 주류 패션계에 대한 좌절감을 표현한 것"이며 "인간의 신체를 하나의 잣대로 규정짓는 것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패션'을 선택한 것일까. "패션은 내가 선택한 가장 중요한 예술 형태다. 성적 기호나 정치 성향까지 나타낼 수 있는 자기표현 수단이니까. 우리는 아침에 옷을 고를 때도 의도에 따라 선택한다. 그 사람의 옷을 보고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패션은 매우 민주적이고 기본적인 예술이다."

닉 나이트는 1958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1970년대 말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의대로 진학했으나 다시 적성을 찾아 본머스앤풀 예술대학(Bournemouth & Poole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이 시절 닉 나이트는 자신과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닌 동시대 젊은이들 '스킨헤드(Skinheads)'족의 패션과 일상에 매료돼 작품으로 남겼다. 이 프로젝트는 후에 닉 나이트가 전문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계기가 됐다. 작가의 '스킨헤드' 작품들은 1982년 사진집으로 출간된 이후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 공개됐다.

Susie Smoking, Susie Bick for Yohji Yamamoto, 1988 (사진제공 :대림미술관)

Susie Smoking, Susie Bick for Yohji Yamamoto, 1988 (사진제공 :대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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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패션 매거진 '아이디(i-D)'와 함께 진행한 초상사진 섹션에서는 반가운 얼굴들을 찾아볼 수 있다. 카메라를 응시하며 춤을 추는 듯한 팝스타 레이디 가가, 임신 중인 모델 에린 오코너, 세계적인 모자 디자이너 스티븐 존스 등이 그 주인공이다. '페인팅 & 폴리틱스' 섹션에서는 사진과 회화, 디지털 그래픽 기술을 결합한 닉 나이트 고유의 초현실주의 스타일이 잘 드러난다. 존 갈리아노의 드레스에 핑크색 파우더를 흩날려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사진, 알렉산더 맥퀸의 의상을 입은 모델 데본 아오키를 미래지향적 사이보그 전사로 그려낸 사진 등에서 그의 과감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최근에는 모델 케이트 모스의 사진을 3D 프린터로 출력해 조각상으로 만든 작품까지 선보이는 등 닉 나이트는 여전히 실험적 작업의 최전선에 서있다. 그는 셔터를 누르는 한 순간만을 포착해내는 사진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다. 온라인 플랫폼 '쇼 스튜디오(Show Studio)'를 통해 자신의 패션필름을 실시간으로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닉 나이트는 "휴대폰 등 여러 기술이 가능한 사회에서는 가능한 모든 소통방식을 동원해 이미지를 발현해야 한다. 이제 사진은 과거를 응시하는 게 아니라 더 열어야 한다. 단편적인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인 단계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전시는 내년 3월26일까지.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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