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시절, 매일같이 등교하자마자 운동장의 국기를 바라보며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하고 나서야 교실로 향했던 세대다. 영화 '국제시장'에 나온 장면처럼 하오의 나른한 시간을 가로지르는 사이렌, 멈춰지는 도시, 저마다의 가슴에 올려진 손들을 기억하고 있다.
"느들 힘든 거 안다. 암만 짬밥 먹어도 일어나라면 일어나야 하고, 밥 먹으러 가라고 해야 먹을 수 있고…. 그게 힘든 거지. 시키는 대로 하는 거." 병장 때, 겨울 훈련을 받다가 잠깐 장작불을 쬐게 해줬던 주임원사가 했던 말이다. '이제 마음잡고 공부해야지' 싶다가도 "공부 좀 해라!" 한 마디에 차갑게 식어버리는 학구열을 누군들 느껴보지 않았던가.
극단적인 예를 들어 전쟁 나면 마음속으로 깊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총을 들지, 관공서에서 태극기 꽂아놓은 집에서 죄다 뛰쳐나올 리야 만무하지 않나.
최근 한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도산 안창호 선생의 후손들이 소개됐고 당시 독립운동에 쓰인 태극기도 선보였다. 사적인 삶을 접어두고 오직 조선의 독립을 위해 한평생을 바쳤던 선생의 일생은 진한 감동이었다. 존재의 가치는 사라졌을 때 잘 알 수 있듯이, 국가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 볼 수 있었다.
우리 집 앞에 꽂힌 태극기와 그 태극기는 같은 문양이지만 천양지차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누군들 대한민국이 소중하지 않겠는가. 그 상징 역시 마찬가지다. 잘만 하면 시키지 않아도 애국하기 마련이다.
박철응 금융부 차장 h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