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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연대…카뮈와 서태지는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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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2일 막오르는 뮤지컬 '페스트' 작가·배우 김은정

2차 세계대전 뒤 공황상태의 사람들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쓴 카뮈의 원작
인간이 가진 저항과 연대 정신 강조

서태지는 노래로 대중을 깨우려 노력
뮤지컬에 등장하는 '시대유감' 가사
'싸우자, 네 목소리를 내라'는 메시지
"저항, 연대…카뮈와 서태지는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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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알베르 카뮈(1913~1960)와 서태지(44), 두 천재가 만났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서태지의 음악을 입었다. 뮤지컬 '페스트'. 작품을 관통하는 코드는 '저항', '연대', '정의', '희망'이다.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살았고 살고 있는 두 예술가가 맞닿은 지점이기도 하다.

서태지의 노래로 뮤지컬을 만들자는 논의는 2007년부터 있었다. 제작사 스포트라이트를 거쳐 버려진 대본만 일곱 개다. '로미오와 줄리엣', '우주전쟁' 등 소재도 다양했다. 스포트라이트 측은 "서태지의 음악을 만난 이야기는 시작은 해도 끝맺음이 어려웠다. 무엇보다 서태지의 마음에 들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뮤지컬화 자체에 부정적이었을 뿐더러 정치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자신의 가사와 대본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페스트'는 서태지가 처음으로 '오케이'한 대본이다. 2014년 안재승 작가(37)가 원안을 마련했다. 스포트라이트는 이를 무대화하기 위해 오랫동안 제작진을 물색했다. 지난 2월 노우성(43) 연출과 김은정(43)ㆍ노우진 작가(37)와 계약했다.'셜록홈즈2' 등을 만들며 창작뮤지컬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다. 2개월에 거쳐 대본 수정이 이루어졌다. 시놉시스를 받아든 서태지는 스스로 '난독증'이라면서 그럼에도 단숨에 읽었다며 기분 좋아했다.
김은정 배우 겸 작가(사진=스포트라이트 제공)

김은정 배우 겸 작가(사진=스포트라이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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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작가를 13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페스트'에서 배우 황석정(44)과 함께 시장 '리샤르' 역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사실 카뮈의 팬이지만 서태지의 음악에는 문외한이었다. 제작 제안을 받은 뒤 3일 밤을 새며 서태지의 음악을 들었고 김 작가는 "두 사람은 완전히 통한다"고 결론 내렸다.

'페스트'는 '이방인'과 함께 카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소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사람들이 공황상태에 빠졌을 때 카뮈가 상처받은 이들을 위해 썼다. 알제리의 항구도시 오랑에 어느 날 흑사병(페스트)이 퍼진다. 도시는 격리되고 시민들은 고독을 강요받는다. 부조리한 현실 속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가지만 굴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연대하는 이들이 있다. 죽음의 위기에 맞서는 선한 의사 리유와 신에게 절망하면서도 기도하는 신부 파늘루, 애인이 기다리는 파리에 돌아갈 수 없게 된 신문기자 랑베르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김 작가는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 인간이 신보다 위대한 이유는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자고 했다. 서태지 역시 '싸우자', '네 목소리를 내라'며 대중을 깨우려 했다"며 두 예술가의 연결고리가 '저항'과 '연대'라고 설명했다.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거 자식들 되게 시끄럽게 구네! 그렇게 거만하기만 한 주제에/나이 든 유식한 어른들은 예쁜 인형을 들고 거리를 헤매 다니네/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부러져버린 너의 그런 날개로 너는 얼마나 날아갈 수 있다 생각하나/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서태지와 아이들 '시대유감' 中)

뮤지컬에는 '시대유감', '너에게', '죽음의 늪', '코마', '라이브 와이어' 등 서태지 음악 스무 곡이 등장한다. 대중적인 곡들은 아니다. 김 작가는 "목표를 정했다. '유명한 노래는 배제하자.' '난 알아요' 등 히트했지만 극의 몰입도를 낮추는 곡은 모두 제외했다"며 "뮤지컬을 통해 주옥같지만 단지 그때 유행이 되지 않은 서태지의 음악들이 재해석될 수 있다"고 했다.

제작진은 노래 가사 하나 바꾸지 않았다. 김 작가는 "첫 미팅 때 서회장님(서태지 별명)이 먼저 '가사를 바꿔도 좋다'고 하더라. 우리로선 가사의 배치를 바꾸는 것도 정말 조심스러웠는데 의외였다. 근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소설과 음악이 자연스레 통했기 때문이다. '나'를 '너'로 바꾸는 주어나 목적어의 인칭 변경은 있었다.
뮤지컬은 원작과 달리 시대적 배경이 미래다. 김 작가는 "서태지의 실험적이고 강렬한 록 사운드가 과거나 현재보다는 미래에 보다 어울렸고 시대가 바뀌면서 이야기가 더욱 극적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2090년대 오랑, 세상에 불행한 사람은 없었다. 시민들은 질병과 죽음이 없는 이 도시가 '완벽'하다고 믿었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던 날, 한 여자가 쓰러졌고 원인 불명의 병 '페스트'가 무서운 속도로 번진다. 시민은 고립됐고 이제껏 1%의 지배층이 원하는 삶의 방식으로 '개, 돼지'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작가진은 더욱 극적인 무대를 꾸미기 위해 악의 두 축을 세웠다. 페스트 백신을 통해 돈과 권력을 쥐려는 '코타르'와 은폐와 체제유지에 급급한 오랑시 시장 '리샤르'다. 김 작가는 "카뮈의 소설은 소설로서는 좋지만 무대화하기에 임팩트 있는 사건이 부족했다"며 "악역을 세우고 타로와 시장을 여자로 바꿔 극적 설정과 입체적인 캐릭터, 박진감 있는 스토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부조리한 세계에 저항해 허무감을 이기고 휴머니즘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카뮈의 메시지는 그대로 유지했다.

1947년에 나온 소설이 지금 공연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이유는 '페스트'가 2016년 현재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페스트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메르스 같은 전염병일 수도 있고 미디어를 통해 헛된 약속과 '뻘소리'를 하고 시민을 하찮게 여기는 상위 1%일 수도 있다"고 했다. 또 "남의 시선에 맞춰가며 우르르 따라하고 비판하는 시민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카뮈는 알고 있었을까. 그는 소설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수십 년 동안 가구나 내복에 잠복해 있고, 방이나 지하실, 트렁크, 손수건, 낡은 서류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유)는 알고 있었다. 또한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페스트가 쥐들을 다시 깨우고, 그 쥐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로 보내 죽게 할 날이 오리라는 사실도 그는 알고 있었다."
(7월22일부터 9월30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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