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바티칸 법원은 이날 일명 '바티리크스2' 선고 공판에서 지난해 11월 바티칸 내부의 복마전을 파헤친 '성전의 상인'과 '탐욕'이라는 책을 각각 내놓은 이탈리아 기자 잔루이지 누치, 에밀리아노 피티팔디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이들이 기밀을 바탕으로 책을 저술한 행위가 바티칸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에 바티칸 법정에서 죄를 묻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이 같은 판결을 내린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개혁을 위해 설치한 바티칸 개혁특별위원회의 비밀문서를 주된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 책들은 교황청의 부실 운영, 일부 추기경과 주교의 탐욕,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을 방해하는 바티칸 내부의 저항 등을 담고 있다.
책 내용 가운데에는 바티칸이 전 세계 교구에서 거둬들인 헌금의 약 20%만이 자선 등 선한 일에 사용되고, 나머지 80%는 교황청 내부의 관료 조직을 유지하고, 일부 성직자가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데 쓰인다는 폭로도 들어있다.
미국 국무부의 기밀 문서를 공개한 위키리크스에 빗대 '바티리크스'라는 신조어 탄생의 계기가 된 이 책은 베네딕토 16세의 집사 파올로 가브리엘레로부터 건네받은 기밀문서를 바탕으로 저술됐으며, 베네딕토 16세의 자진 퇴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
3년 만에 바티칸 비리를 폭로한 두 번째 책으로 '바티리크스2'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낸 누치 기자는 이날 재판이 끝난 뒤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며 "이번 판결은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만족감을 표현했다.
언론 단체들과 두 기자들의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 "그들이 책을 쓴 것은 바티칸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할 의도에서가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누린 것일 뿐"이라며 이들에게 유죄가 선고될 경우 언론 자유가 심각히 후퇴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당초 바티칸 검찰은 지난 4일 누치 기자에게는 징역 1년을, 피티팔디 기자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구형했고, 홍보전문가 샤오퀴에게는 징역 3년9개월, 발다 몬시뇰과 그의 비서인 마이오에게는 각각 징역 3년1개월, 징역 1년9개월을 구형한 바 있다.
스페인 출신의 성직자 발다 몬시뇰은 재판 과정에서 누치 기자에게 바티칸 전자문서와 이메일 계정에 접근할 수 있는 비밀번호를 넘긴 사실을 실토해 '바티리크스2' 연루자 가운데 최고형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발다 몬시뇰은 재판 과정에서 "내 치부를 폭로하겠다는 샤오퀴의 협박과 위협에 굴복해 기밀을 유출했다"며 샤오키에게 책임을 떠넘겼고, 샤오키가 이를 부인하는 과정에서 바티칸의 성추문, 성직자들의 호화로운 파티, 바티칸 관료 조직의 암투 등이 드러나며 '막장 드라마'가 연출되기도 했다.
검찰은 샤오퀴를 문서 유출의 주동자로 보고 기소된 5명 중 최고형을 구형했으나, 시종일관 혐의를 부인해온 샤오퀴는 선고 전 최후 진술에서 "어린 아들을 놓고 쇠창살 뒤에서 몇 년을 보낼 수 없다"고 눈물로 호소하며 투옥을 면했다.
변호인마저 자신의 의뢰인을 향해 "막말을 일삼고, 무례하고, 주제넘지만 이것만으로 죄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인정할 만큼 재판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물의를 일으킨 샤오키는 지난 달 아들을 출산해 최종 심문 단계에서 법정에 생후 3주 된 젖먹이를 데리고 출두하기도 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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