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장학금 받던 서울대생의 자살 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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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열아홉 살. 우리 나이로 스무 살. 18일 새벽 4시에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옥상에서 서울대 재학생 하나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그는 대통령 장학생에 뽑혀 매달 50만원씩 장학금을 받던 촉망받는 수재였다. 지방의 유명과학고 출신으로 1년 앞당겨 학교를 조기졸업하기도 했다.대학 강사와 중학 교사를 부모로 둔 집안에서 자라나 가정형편을 비관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 주위의 전언이다. 그의 페이스북과 서울대생 인터넷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엔, 20분쯤 전에 그의 결심을 암시하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죽는다는 것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비합리적인 일은 아닙니다. 이걸 주제로 쓴 글이 ‘글쓰기의 기초’ 수업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 제 유서에 써도 괜찮은 내용일 겁니다. 제가 아는 경우에 대해서, 자살은 삶의 고통이 죽음의 고통보다 클 때 일어납니다. 다분히 경제적인 사고의 소산입니다."

자신이 금수저도 황금전두엽도 아니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는 서울대생의 죽음은, 이 사회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너무 크다. 청춘의 격정이 느껴지는 그의 유서를 거듭 읽으며, 나는 수십년전으로 돌아가 내 등 뒤를 기웃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을 요즘 세대의 나약이나, 서둘러 절망하는 조급으로 읽어야할 것인가. 우리 시대엔 그보다 더한 고통도 이겨내고 그보다 더 지독한 부조리와 부당함도 견뎌냈다고, 훈계부터 내놓을 셈인가. 혹은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이며 그의 주변이나 삶의 방식에서 이유를 찾을 것인가. 그는 몇 차례 자살을 시도한 바가 있다고 고백을 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 인터넷판과 언론에 회자되면서 급속히 번진 유행어인 '흙수저'와 '수저계급론'은, 청년 취업 수난기에 붙잡을 지푸라기도 없는 그 세대의 심정을 절절하게 대변했다. 학교를 졸업해도 취업하는 일이 기적이 되어버린 청춘들은, 알바와 인턴과 막일과 이상한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며,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이해못할 프레임 속으로 들어와 고통받고 있다. 향후 10년내에 졸업 즉시 백수가 되는 인구가 80만이 될 거라 하니 이 또한 끔찍한 일이다. 이런 비전도 없는 아우성의 사회 속으로 뛰어들기 위해,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스트레스와 공포감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서울대생의 죽음은 그래서, 개인사를 넘어서 있다. 청년 취업을 절망으로 이끈 '정책 무능'과 그것을 방관해온 이 사회의 어른들이 저지른 '억압'의 결과일지 모른다.

그는 죽음이 비합리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삶의 고통과 죽음의 고통을 비교하여 살 만한 가치가 없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경제적인 사고'라고 말한다. 이 말은 자신의 죽음의 당위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당면한 삶의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 당면의 삶의 고통은 누가 주었는가. 그는 세상에 떠도는 수저론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먼저 태어난 자, 가진 자, 힘있는 자의 논리에 굴복하는 것이 이 사회의 합리입니다." 먼저 태어난 자는 어른이며, 가진 자는 부유한 자나 재계를 가리키며, 힘있는 자는 정치 권력이나 기득권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이 세상의 합리가 자신의 합리와 너무나 달랐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비합리'가 아니라, 사회가 강요하는 모범답안이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촉망받던 한 대학생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간 이 사건에 대해 최악의 비정상으로 치닫는 청년실업의 엄청난 사회적 통증을 드러낸 '치명적 사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단순히 수저를 비관한 것이 아니다. 미래 세대에 대해 출발부터 제대로 기회조차 주지 않는 어른과 기득권의 무능과 무책임을 고발한 것이다. 저 죽음 앞에서도, 우린 이 미친 현실을 방관하고 외면할 셈인가.


* 다음은 그가 남긴 유서 전문


제 유서를 퍼뜨려주세요.


**이 형이 딱 이맘때에 떠난 것 같아서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늘이군요. 생명과학부 12 월 18 일엔 뭔가 있나 봅니다. 저도 형을 따라가려고요.


힘들고 부끄러운 20 년이었습니다. 저를 힘들게 만든 건 이 사회고, 저를 부끄럽게 만든 건 제 자신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더 이상 힘들고 부끄러운 일은 없습니다. 지금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죽으면 안 된다.” 엄마도 친구도 그러더군요. 하지만 이는 저더러 빨리 죽으라는 과격한 표현에 불과합니다. 저를 힘들게 만든 게 누구입니까. 이 사회, 그리고 이를 구성하는 ‘남은 사람들’입니다.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못 하고, 나를 괴롭힌 그들을 위해서 죽지 못하다니요.


또 죽는다는 것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비합리적인 일은 아닙니다. 이걸 주제로 쓴 글이 ‘글쓰기의 기초’ 수업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 제 유서에 써도 괜찮은 내용일 겁니다. 제가 아는 경우에 대해서, 자살은 삶의 고통이 죽음의 고통보다 클 때 일어납니다. 다분히 경제적인 사고의 소산입니다.


말이야 이렇게 했지만, 그렇다고 저를 너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으로 보지는 말아 주십시오. 20년이나 세상에 꺾이지 않고 살 수 있던 건 저와 제 주위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아직 날갯짓 한 번 못 한 제가 아까워 잠실대교에서 발걸음을 돌렸고, 제가 떠나면 가슴 아파 할 동생과 친구들을 위해 옥상에서 내려온 게 수 차례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힘이 듭니다. 동시에 부끄럽기 까지 합니다. 제 자신과 세상에 대한 분노가 너무 큰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이만 꺾일 때도 됐습니다.


무엇이 저를 이리 힘들게 했을까요


제가 일생동안 추구했던 가치는 합리입니다. 저는 합리를 논리 연산의 결과라 생각합니다. 어느 행위가 합리적이라 판단하는 것은 여러 논리에서 합리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합리는 저의 합리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그렇다고 그걸 비합리라고 재단할 수 있는가 하면 또 아닙니다. 그것들도 엄밀히 논리의 소산입니다. 먼저 태어난 자,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논리에 굴복하는 것이 이 사회의 합리입니다. 제 개인적으론 비합리라 여길 수 있어도 사회에서는 그 비합리가 모범답안입니다.


저와는 너무도 다른 이 세상에서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좋은 기억이 없는 건 아닙니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꼽으라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작년 가을에 무작정 여권 하나 들고 홀로 일본을 갔다 온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 제주도에서 돌아온 다음 날의 일입니다. 즐거운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 보통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그날 들은 수업은 너무나도 흥미로웠습니다. 먼저 생물학 시간에 인간과 미생물의 상호관계를 배우고 너무나 감명 받았습니다. 인간과 미생물은 정말 넓은 분야에 깊게 상호작용 하고 있었습니다. 연달아 있는 서양사 수업에서는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배웠습니다. 유물론적 사관에 익숙한 저에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8 동을 나오는 길에 든 생각이 잠자리까지 이어졌습니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학문을 하는 것은 정신적 귀족이 되는 것이라 표현했습니다. 그때만큼은 제가 그 정신적 귀족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서로 수저 색깔을 논하는 이 세상에서 저는 독야청청 ‘금전두엽’을 가진 듯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금전두엽을 가지지도 못했으며,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전두엽 색깔이 아닌 수저 색깔이군요.


맛있는 걸 먹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목이 너무 말라 맥주를 찾았지만 필스너우르켈은 없고 기네스뿐이어서 관뒀습니다. 처갓집 양념치킨을 먹고 싶지만 먹으면 메탄올의 흡수 속도가 떨어질까 봐 먹지 못하겠네요.


혹시 제가 실패하더라도 저는 여러분을 볼 수 없을 겁니다. 눈을 잃게 되거든요. 오셔서 손이나 잡고 위로해 주십시오. 많이 힘들 겁니다.


제가 성공한다면 억지로라도 기뻐해 주세요. 저는 그토록 바라던 걸 이뤘고 고통에서 해방됐습니다. 그리고 오셔서 부조 좀 해 주세요. 사랑하는 우리 동생 **이가 닭다리 하나나 더 뜯을 수 있게 해 주세요.


마지막으론 감사를 전해야겠습니다. 우울증은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로 완화됩니다. 상담치료로썬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도 있지만 ‘실질적’인 위로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근거도 없는 ‘다 잘 될 거야’ 식의 위로는 오히려 독입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으로 괴로워 할 때 저런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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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위안이 된 사람으로 둘이 기억나네요. 하나는 **누나입니다. “힘들 때 전화해, 우리 가까이 살잖아.” 이 한마디로 전 몇 개월을 버텼습니다. 전화를 한 적은 없지만, 전화를 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도 이렇게 멋진 사람이 날 위로해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힘이 됐습니다. 누나 정말 고마워. 미안해. 결국 전화를 하지 못했네...


다른 하나는 ***입니다. ***도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질문 하나 할 때도 매번 안부 물어봐 주고 이것저것 챙겨다 주고 고마웠습니다. 또 제가 약대 준비할 땐 교재도 빌려 주고 결과 발표 일시도 상기시켜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와줬습니다. 약대 붙으면 맛있는 스시를 사기로 했는데, 결국엔 사지 못하게 됐네요. 고맙고 미안해... 행복하게 지내렴.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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