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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미디어 좌충우돌']조선일보와 한겨레 기사는 왜 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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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미디어 좌충우돌'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오랜 기자 생활 동안, 날마다 신문을 비교해서 읽어보며,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동일한 팩트를 다른 관점으로 보도하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아왔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조선일보는 비양심적이고 한겨레는 양심적이어서 그럴까. 조선일보는 애국적이고 한겨레는 민족적이어서 그럴까.

수습기자 연수교육에 강의를 하러 가면, 가끔 수강하는 기자를 불러 세워놓고 당황스러울 질문을 한다.
"혹시 일본 좋아하세요?"
".... 일본은 별로인데 일제는 좋아해요." (하하하)
"그러면 아베는 좋아하세요"
"별로 안 좋아해요. 못 생겼고, 욕심 많고, 이상한 소리 잘하고..."(하하하하)
"아, 그렇군요. 중국은요?"
"....중국은 나쁘진 않아요. 기분이 썩 좋진 않지만..."(하하하하)
"그럼, 시진핑은 어때요?"
"뭐, 그 친구는 쏘쏘예요. 쎄쎈가? ㅋ 야튼 뭐 좀 야심이 있어서 구려보여요."(하하하)
"그렇다면...북한은 어떠세요? 좋아하세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안 좋아하세요?"
"못살고, 옛날에 우리나라 쳐들어왔고, 좀 궁상맞아서..."(하하하)
"그렇다면 김정은은 좋아하세요?"
"싫습니다. 아주 못 됐잖아요. 사람도 잘 **고...." (하하하하)

거의 이런 순서로 물어보고, 대답은 각기 다르지만 질문을 받았을 때 고심하는 뉘앙스는 비슷해 보인다. 왜 이걸 이토록 진지하게 혹은 공격적으로 물어보는 것일까. 이 질문을 한 뒤 내가 정리해주는 멘트는 이런 것이다.

"대개 국가에 대한 호불호는 '인접국가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멀리 있는 나라는 감정이 잘 생기기 어렵습니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인접국가가 아닌 멀리 있는 국가에 대한 감정도 생겨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영국도 프랑스나 독일에 대한 인접국가 감정이 있고, 러시아나 폴란드 또한 그렇습니다. 아프리카도 그들의 인접국가에 대한 감정이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스웨덴이나, 스페인, 체코, 파라과이, 이런 먼 나라에 대해선 별로 감정이 별로 생겨있지 않지만, 일본과 중국과 북한에 대해선 무의식처럼 잠복한 감정이 있습니다. 이 감정은 역사적인 경험들을 통해서 축적되고 내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이웃국가에 대한 증오나 적개심이 생겨나 있는 까닭은, 대부분 전쟁을 치른 경험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쟁경험의 역사적 기억은 100년 정도를 시한으로 잡습니다. 1세대를 30년으로 보면 3세대가 지나면서 기억의 전승이 약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는 듯 합니다. 이웃나라일수록 지리적 여건상 전쟁을 치를 확률이 높고, 그래서 적개심이 무의식에 기입되기 쉽다고 볼 수 있죠.

중국은 병자호란(1636), 한국전쟁 중공군개입(1951)의 기억으로 우리 '분노수첩'에 적혀있습니다. 아마도 그들도 그걸 적어놨을 겁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군사는 잔인했지만 시간이 좀 흘러서 거의 잊혔고, 중공군개입은 북한과의 전쟁에 원병으로 참여한 것이라 조금 강도가 덜합니다.

일본은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1597)의 악몽이 있고, 근대에 와서는 한일합병(1910)과 36년간의 식민통치가 있습니다. 왜란은 전국토를 유린한 가장 큰 전쟁이었기에 분노가 무의식에 스며들어 오랫동안 작동하고 있으며, 식민지 시절은 긴 기간의 무자비한 통치로 또한 우리의 적개심을 충전해왔습니다. 중국보다 일본이 더 미운 것은 전쟁과 불화가 현재와 더 가까운 쪽에 더 치명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북한은 같은 민족이지만 직접 서로 총부리를 겨눈 최근의 전쟁과 잠정적인 휴전을 기억으로 공유하고 있는 존재이기에, 현재까지 우리 내면에 치명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보도 관점이 다른 까닭은, 기본적으로 분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분단의 적개심을 플랫폼으로 깔고 있는 조선일보는 전쟁을 치르거나 그 기억을 생생하게 전수받은 세대에게 어필하는 전략을 쓰고 있는 신문이라 할 수 있고, 전쟁에서 시간적으로 멀어진 1988년에 시민의 자발적 모금으로 창간한 한겨레신문은 분단시대를 극복하는 통일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있는 '관점'의 세대교체를 주창하는 신문이라 할 수 있다. 같은 팩트를 놓고 관점이 달라지는 것은 스스로를 세워놓고 있는 입장(서있는 자리)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진지적 사고라고 표현한다.

즉 조선일보는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남쪽 진지에 앉아서, 북한 문제와 통일 문제를 바라본다. 절대로 이 진지에서 일어나 다른 관점을 보기 위해 이동하는 법이 없다. 한겨레는 최소한 남쪽 진지에만 앉아있지 않으며, 오히려 분단의 중심선에 있거나 북쪽 진지에 앉아서 남쪽의 문제와 통일문제, 북한 문제를 들여다본다. 이렇게 보면 한겨레가 좀 더 유연할 것 같아 보이지만, 진지가 북쪽에 가깝다는 일관성을 지니기에 완고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조선일보는 '전쟁의 기억'을 파는 신문으로 성공한 언론이다. 한겨레는 그 전쟁의 관점에서 몸을 빼서 다른 관점으로 보는 것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는 신문으로 일정한 자리를 잡은 언론이다. 이게 모두 분단국가가 생산한 언론의 구조이며 사유의 구조이며 관점의 구조라 할 수 있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틀을 이해하는 것이 이 나라의 정신적 회로를 이해하는 핵심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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