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가 작렬했던 시절에는 겨우내 내복을 입지 않았다. 몸은 덜덜 떨면서도 입으로는 "무슨 내복이냐"고 했다. 지금은 발열까지 되는 내복을 껴입는다. 예전에 비해 얇아져서 입기도 편하다.
허세의 유치찬란함을 깨달았고 추위를 덜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체온이 건강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자각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옷을 걷어올려 배를 드러내고 자면 배앓이를 하는 것도 체온과 연관돼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예 상의를 벗은 채 찬 바닥의 시원함에 몸을 맡긴 채 잠들곤 했던 버릇이 평생의 적인 비염을 불러오는 한 단초가 됐으리라고 추측한다.
한의학의 원리 중 하나가 수승화강(水昇火降)이다. 차가운 기운은 위로, 따뜻한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게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하라는 두한족열(頭寒足熱)도 있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기원 전 400년에 "약으로 고칠 수 없는 환자는 수술로 고치고, 수술로 고칠 수 없는 환자는 열로 고치며, 열로 고칠 수 없는 환자는 불치의 환자"라는 말을 남겼다. 그보다 앞서 기원 전 3000년에 만들어진 이집트 파피루스에는 고온을 이용해 가슴의 종양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기도 하다.
낮은 체온은 소화기를 비롯해 갑상선, 간, 심혈관계 질환 발생의 원인이 되고 암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에는 대한온열암치료연구회가 발족하기도 했다. 생물의 세포는 고온에 노출되면 생명 유지에 필요한 단백질이 응고되며 사멸하는데 특히 암세포는 정상세포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온에 약하다고 한다.
체온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반신욕이나 족욕이 있다. 옷을 입을 때도 하반신과 발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것이 좋다. 또 어깨와 등, 허리를 곧게 펴고 생활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자세가 바르면 근육의 균형이 좋아지고 혈액 순환이 잘 이뤄져 체온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규칙적인 운동은 두말할 나위 없이 언제나 옳고 체온 관리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다.
마음도 온도가 중요하다. 차가운 마음은 병을 부른다. 최근 케이블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신드롬의 주된 키워드는 그 시절의 따뜻함이 꼽힌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1997년과 1994년을 거쳐 1988년까지 내려가며 현재와 멀어졌는데 시청률은 갈수록 올라간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마음이 추워서 TV를 보는 동안이라도 따스해지는 가슴을 확인할 수 있어서 아닐까. 비록 그것이 가공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모두 사람 때문에 힘들어한다. 나도 힘들지만 결국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도 나다. '발열'이 필요하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