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지난해 11월 27일, 세계의 관심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고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총회에 모아졌다. 배럴당 110달러까지로 치솟았던 국제유가가 두달사이 70달러 중반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OPEC가 강경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OPEC는 감산이 아닌 '생산량 고수'를 발표했다. 번성하던 미국의 셰일 오일 업계를 고사시키고 원유시장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저유가를 감수해야 한다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주장에 따른 결정이었다. OPEC발(發) 유가 전쟁이 선포된 순간이었다.

OPEC 석유장관들은 오는 4일(현지시간) 빈에서 열리는 정기총회에 다시 모인다. 지난 1년의 유가 전쟁 경과를 점검하고 내년도 전략을 세우는 자리다.


그러나 지난 1년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국제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1일 배럴당 44달러선에서 거래됐다. 유가 전쟁을 벌이는 동안 국제유가는 40% 이상 하락했다.

1년전 예상을 한참 빗나간 것이다. 가장 큰 패착은 미국 셰일 업계의 생존능력에 대한 과소평가다. 당시 북미 셰일업계의 생산단가는 60달러 안팎으로 추정됐다. 저유가가 지속되면 셰일업계는 줄도산하고 생산량도 줄어들 것이란 계산이 가능했다.


실제로 지난 해 11월 당시 1573개였던 미국내 원유채굴장비수는 1년 만에 555개까지 줄었다. 하지만 당시 하루 919만배럴 수준이던 산유량은 지난 8월 기준으로 932만배럴을 기록, 오히려 증가했다. 셰일업계가 대대적인 원가절감과 신기술 개발로 버티기에 나선 결과다.


사우디아라비아, 미국과 함께 세계 3대 산유국인 러시아 역시 서방의 경제 제재 충격을 줄이기 위해 자국산 원유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형국이다.


OPEC로선 앞으로 전망도 우울하다. 글로벌 원유시장은 장기간의 공급 과잉으로 인해 저장 공간마저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 이로인해 배럴당 40~50달러대의 저유가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지난달 10일 국제유가가 오는 2020년까지 80달러선을 회복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OPEC의 유가 조절 기능마저 손상됐다는 지적도 많다. OPEC는 그동안 유가하락 기미가 보이면 산유량 축소를 통해 가격을 통제해왔다. 그러나 지난 1년 사이 공급과잉을 방치하는 바람에 OPEC의 영향력이 상당히 감소했다는 평가다.


여기에 회원국들 사이의 이견과 알력도 점차 노골화하고 있다. 사우디나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등은 한동안 저유가를 버틸 여력이 있지만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등은 국가 경제 위기에 다다른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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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핵관련 금수조치가 해제되면 내년부터 대대적인 물량공세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미 경제매체 CNBC가 실시한 전문가설문조사에서 이번 OPEC 총회에서 감산 합의는 나오기 힘들 것이란 답변이 100%로 나온 것도 이때문이다.


OPEC 스스로 시작한 유가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이 더욱 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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