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모이는 명절'은 옛말?
대가족→핵가족→1인 가구 변화…확 바뀐 추석 풍경
4명 중 3명 "할아버지·할머니 가족 아니다"
20∼30대 미혼남녀 절반이 '추석=휴식시간"
동호회·블로거 등 가족대체 집단모임 늘어
[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올해 50살이 되는 직장인 김모씨는 직장생활 25년동안 명절에 고향을 가지 않은 적이 없다. 올해도 고향을 방문, 집안 어르신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대가족)
#결혼 1년차 최모(34)씨는 이번 연휴 동안 괌으로 해외여행을 떠난다. 대신 일주일 앞서 성묘를 다녀왔고 부모님도 찾아 뵀다.(핵가족)
#혼자 사는 이모(37)씨는 추석 연휴기간 친구들과 함께 영화 관람 등의 여가를 즐길 계획이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는 나중에 시간이 날 때 들를 예정이다.(1인 가족)
대가족→핵가족→1인 가족 시대를 거치면서 추석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산업화 이후 전통적 가족제도가 사라지고 핵가족의 개인주의가 정착되면서 변모된 것이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우리의 표준 가정은 조부모, 부모, 두 세 자녀가 한 집에서 함께 살았다. 자녀의 인성ㆍ예절교육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을 중간에서 해결했던 것도 할아버지, 할머니였다. 밥상머리에서 자연스럽게 교육이 이뤄졌고, 어깨너머로 눈치껏 배우며 살아갔다.
한 지붕 대가족 생활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갈등은 가족의 소중함과 행복을 가져다 줬다. 때문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족, 가까운 친척들과도 만날 수 있는 명절은 남녀노소 누구나 기다렸다. 그래서 매일매일 추석같이 풍요롭게 살수 있다면 하면서 바랬고, 그 결과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추석만 같아라'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러나 산업화로 발전하면서 요즘의 표준 가정은 젊은 부부와 한 자녀 가족으로 변했고, 3대 이상 거주 가정은 TV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흘러간 전설처럼 됐다.
산업화와 핵가족 사회로 할아버지, 할머니와 생활하는 기회가 거의 없고, 이로 인해 전통적인 가정생활의 법도와 문화를 배우기는 쉽지 않다.
아기 때부터 유아ㆍ유치원에 맡겨서 키우고, 중ㆍ고등학생이 되면 각종 시험에 학원을 이유로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도 거의 못 간다. 각종 제사와 명절조차도 만나서 얘기할 기회가 거의 없다.
급격히 모계 사회로 변화하면서 결혼한 아들은 처갓집 식구들과 자주 어울리고, 친족 식구들과는 교류범위가 적어져 친족 집안의 가풍이 후세에게 전달되기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 4명 중 3명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최근에는 1인 가족이 급격히 늘고 있다. 이들에게 추석은 자신을 위한 휴식시간일 뿐이다.
전국 20∼30대 미혼남녀 238명(남성 86명, 여성 152명)을 대상으로 '싱글의 명절'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47.1%) 가량이 추석의 주된 시간을 가족과 함께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명절 연휴동안 '나를 위해 투자할 것'이라는 답변은 전체의 64.3%를 차지했다. 여성의 의견이 73.7%로 압도적이며, 연휴를 자신을 위해 쓴다는 남성은 47.7%로 그 수가 여성보다는 적었다.
이 같은 사회 현상은 동일한 상황에 노인 새로운 집단을 형성, 또 다른 가족을 만들고 있다.
이산가족 등 고령의 실향민은 경기도 파주 임진각 망배단에서 '망향제'를 함께하며 가족을 그리워하고, 어려운 형편으로 고향에 가지 못하는 쪽방촌 거주자 등 취약계층은 합동차례를 지내며 덕담을 전하고 차례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기업은 물론 동호회, 블로거 등도 뜻이 맞는 공동 집단을 만들어 차례를 함께 지내고, 취미생활을 같이 하며 명절의 행복과 쓸쓸함을 함께 한다.
부모 세대와 떨어져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1인 가구가 빈곤과 사회적 고립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또 다른 가족인 '돌연변이 집단'을 만들어 쓸쓸함을 달래고, 행복을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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